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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역방송(KTVU) 뉴스의 자막. 뉴스는 아시아나 항공의 기장 및 부기장의 명단이라며 `썸팅웡`, `위투로`, `홀리퍽`, `뱅딩오우` 등 아시아인 비하적 허위 이름을 게재했다. |
[뉴욕=뉴스핌 박민선 특파원] "그것이 정말 부당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시아인들은 왜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지?"
최근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사고 관련 샌프란시스코 지역방송(KTVU) 뉴스에서 벌어진 자막 '오류'(?)에 대해 한 미국인 친구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이웃과의 작은 갈등조차 법적 소송 등 공식적 절차를 밟는 것이 일반화된 미국에서 침묵하는 불만은 진정성을 인정받기 쉽지 않은 현실의 재확인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방송사에서 왜 그런 식의 보도를 한 것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실제 그것이 비하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그 대상이 된 아시아인들은, 한인 사회는 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가. 흑인들은 어떠한 일이 있을 때 강한 목소리를 많이 내면서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반면 아시아인들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발생했을 때 화를 내면서도 정작 앞에 나서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지 않더라".
지금 미국은 이른 바 '짐머만' 사건으로 뜨겁게 달궈져 다른 이슈가 끼어들 자리조차 없을 정도다. 비무장 상태의 흑인 소년에게 히스패닉계 백인인 조지 짐머만이 총격을 가해 살해했지만 법은 짐머만에게 무죄를 판결하면서 흑백 논쟁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판결 당시 배심원 중 대부분이 백인이었다는 사실은 백인 중심의 차별적 판결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현재 미국내 100여개 도시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건을 '사회운동'으로 규정하며 연방정부의 책임을 촉구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한 소년이 생명을 잃은 사건과 일부 방송국의 보도 오류를 비교했을 때 겉으로 나타나는 경중의 차이는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비단 그것이 지금 이 순간 미국이 온통 짐머만으로 뒤덮여 '썸팅웡'은 흔적조차 없어진 원인의 전부일까.
수백개 나라에서 건너온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살고 있는 미국에서의 인종간 차별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흑과 백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번 여객기 추락 사고에 대한 일부 미국인들의 아시아인 비하적 태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내 저변에 깔린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시선에서 아시아인 역시 자유로울 수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들은 어떤 부당한 대우와 차별을 당했을 때조차 실질적인 조치를 하는 데 익숙치 않다.
아시아인을 대표해(?) 소송을 진행하겠다던 아시아나 항공 마저 불과 며칠만인 17일 "해당 방송에서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며 기존 입장을 조용히 철회했다.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도 이번 논란은 자취를 감춘 상태다.
모든 일에 대해 소송을 불사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것만이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누가 보더라도 고의적인 의도가 의심되는 허위 명단을 방송사가 여과없이 보도함으로써 아시아인에 대한 조롱을 서슴지 않은 일에 대해서조차 특유의 '너그러움'으로 넘기는 것이 능사일까.
미국 센서스국에 따르면 미국으로의 이민자수는 1억 1600만명 수준으로 이중 아시아계의 증가율은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미국으로 이민한 인구의 60% 이상이 아시아계로 집계돼 그 규모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1970년 대비 2007년 당시 미국으로 학업을 위해, 생계를 위해 미국땅을 찾는 한국인들의 수는 무려 27배 가량 불어났다.
이처럼 미국에서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자리와 대우는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할 몫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다. 미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가벼운 농담을 항상 즐긴다는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고 어우러질 필요도 있지만, 반면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지적하고 항의하지 않으면 이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미국 특유의 환경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미국법'에 따라야 한다는 이야기도 된다.
적어도 미국에서 침묵은 결코 미덕이 아니므로.
[뉴스핌 Newspim] 박민선 기자 (pms07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