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강필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이들에게는 사전증여가 부와 경영 대물림의 정답이었지만 그 다음 세대로의 상속은 만만치 않은 과정이 될 겁니다. 어쩌면 지배력과 경영권을 모두 가지기는 어려워질 수도 있겠죠."
한 대형증권사의 거액자산가 전담 세무사의 견해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재계 주요 그룹의 차기 오너들 상속과정이 이전만큼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확고해 보였다.
실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지하자금 양성화,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이슈 등 차기 오너들의 원활한 상속은 점점 어려워지는 추세다. 이 세무사의 말을 그냥 지나치기는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경제민주화 논의는 앞으로 어디까지 어떤 형태로 가지를 뻗어갈 지 가늠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규제 완화보다는 강화의 방향성이 시대적 요구라는 점이다. 부와 경영의 대물림은 그만큼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재계 오너들은 빠르던 늦던 선택을 해야 할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상당부분 자산을 포기하면서 세금을 지불하는 '깨끗한 승계'를 좇거나 법망의 구멍을 찾기 위해 편법을 동원해야하는 극단적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전 증여가 정답?..미성년 주식부자 많은 이유
일단 전문가들은 향후 편법·탈법을 통한 승계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가 재계 오너의 편법 승계 관행에 대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자칫 득보다 실이 많아지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내 감독기관의 전산화, 선진화도 이전 같은 법망의 구멍을 용인하지 않게 됐다. 오너의 승계를 진행하고 있는 그룹들이 대형로펌이나 회계법인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관련 규제들이 막 도입되는 과도기인 만큼 또 다른 어떤 방법이 새로 등장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이 과정에서 합법과 편법을 택하게 되는 것은 순전히 오너의 의지"라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또 "과도한 상속·증여세가 완화되도록 각 기업들의 로비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기업 경영자의 현실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정책방향이 제시되지 못하면 차기 오너들에게 현재의 그룹을 통째로 상속하기는 불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당장은 부담을 줄이는 상속의 창구는 열려 있다. 아직까지는 상속 이전에부터 자녀의 자산을 늘려 증여와 절세를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 세무사는 "막상 상속 당시에 활용할 수 있는 절세 방안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결국 사전증여가 답이며, 이에 대해 자산가들의 경우 부동산이나, 배당율이 좋은 주식 등을 증여함으로써 자녀들의 시드 머니(seed money)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세가 강화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재벌은 물론 거액의 자산가들이 세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상속시점이 아닌 이미 자녀가 태어났을 때, 그리고 손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적극적인 사전증여를 통해 자산을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대형은행의 CPC센터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지하자금의 양성화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세금을 은닉·탈루하는 것은 어려워졌다"며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을 기준으로, 증여세는 수증자를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분산증여하는 경우 감세 효과를 볼 수 있고, 이는 재벌에게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LG그룹, 두산그룹, GS그룹, KCC그룹, LS그룹, 파라다이스그룹 등은 이미 오너가의 미성년자 자녀들이 수십·수백억원 단위 주식을 보유한 경우가 즐비하다. 대부분 부모나 조부모에게 증여받은 것으로 주가 약세장이 이어졌던 2008년께 이루어진 케이스가 많다. 이들은 증여받은 지분을 기반으로 매년 배당금 등으로 착실하게 재산을 증식하는 중이다.
◆정부-기업, 상속·증여 '윈윈' 모델 필요
그러나 탈법·편법의 유혹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집단에서 오너가 차지하는 위치상, 편법은 여전히 달콤한 유혹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 정서에서 제왕적 리더십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구조는 아직 미흡하다.
무엇보다 사전 증여 역시 막대한 과세가 이뤄진다는 측면을 감안하면 상속증여세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크다. 이에 반해 지금까지 편법으로 재산을 불릴 수 있었던 일감 몰아주기 등의 방법은 현재 막힌 상황.

최근 이슈가 됐던 조세피난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역외탈세 자금 운용, 고가 미술품 거래를 통한 자금은닉, 선대의 차명계좌 활용을 통한 지배력 강화, 비자금 운용 등의 방법은 이같은 유혹을 이기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적절한 균형을 강조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승계 과정에서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상당부분 포기할 상황에 몰린 오너들이 결국 도박을 벌이는 것 아니겠느냐"며 "상속증여세와 기업의 현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에 한해서는 이같은 상속세에 대한 피해를 방지해주는 제도를 시행중이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가업승계에 따른 공제가 확대돼 매출 2000억원 이하의 기업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의 70%를 공제받을 수 있다.
다만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을 해야만 하고 최대주주가 지분의 50% 이상(상장기업은 30%)을 보유해야한다는 조건이 있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독일의 경우 20인 이상 고용 사업체에 가업상속을 허용해 대기업도 대상이 된다. 상속 혜택을 주는 대신 5∼7년간 해당 기업의 총임금 창출 수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 수준을 일정 이상 유지하면 된다. 정부와 기업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셈이다.
재계가 우리 정부에 독일 수준의 가업상속 제도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현 시점에서 재계의 상속 관련 흐름을 엿보기란 쉽지 않다. 현재 관련법안이 만들어지는 과도기인데다 정부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가질지도 아직은 미지수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강필성 기자 (ik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