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행장 인선에) 개입했으면 손에 장 지진다"
금융당국의 고위급 인사가 지난 7월 모 은행장 인선과 관련 개입 의혹이 불거지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던진 말이다.
당시 이 은행 노조는 외압에 따른 신관치금융으로 규정하고 회장 퇴진 요구도 불사하겠다면서 강력 반발했다. 이후 신임 은행장은 노조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무마하면서 결국 보름만에 출근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청와대의 소통 리더쉽 부재 현상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거래소 차기 이사장 인선 과정이 혼탁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은행에서 벌어진 관치논란이 거래소에서도 다시 한번 배태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11일 현재 거래소 임원추천위원회가 서류 및 면접심사를 진행중인 가운데 중간 판세를 보면 거래소 이사장에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과 유정준 전 한양증권 사장 간의 2파전 양상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하지만 이들 후보의 능력과 경력보다 청와대, 금융위원회의 누가 밀고있다는 얘기가 더 크게 들린다.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이처럼 정부가 언제부턴가 산하기관을 떡주무르듯 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정설처럼 되어 있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마땅한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래소는 공공기관이며 따라서 거래소 수장인 이사장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다. 또한 거래소에는 또한 '한국거래소법'이 있어 법적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구성되고 운영하게 되어 있다.
또한 거래소의 소유 지배구조를 보면 정부 지분이 없는 주식회사로서 사실 주인은 민간 금융투자업체들이 지분을 100% 나눠갖고 있다.
따라서 이같은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금융위 ▲소유의결권을 가진 민간 주주 등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은 이른바 '3권 분립의 원칙'이 있어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거래소의 본바탕을 떠받치고 있는 사실상의 주인 일반 투자자와 상장기업들, 그리고 선량한 국민들이 있다.
모두가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원칙과 정신을 지키려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야 한다. 정부가 원칙을 가장 먼저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6월 거래소 이사장 선임 절차가 석연찮은 이유로 중단됐던 것도 관치논란, 혼탁 양상 때문이었다. 물론 청와대도 거래소 법에 따라 원칙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였으면 해결될 수 있는 것을 선임 절차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아니나 다를까 두달 여만에 인선절차가 재개되자 마자 또다시 루머가 번지고 있다. 마치 과거 3권 분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바나나 정부'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거래소 수장의 임명권을 가진 청와대는 어떻게든 낙하산 인사를 공신으로 세우려 한다. 금융위 측은 어떻게든 청와대의 입김을 효과적으로 마사지하면서 자기 라인에 가까운 인물을 앉히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거래소의 본래 주인인 투자자나 기업, 국민들은 이같은 광경을 보면서 뭐하는 짓인지 답답한 것이다.
사실 해법은 간단하다. 법이 있는 곳에서는 법을 따라 지키면 된다. 만약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면 임명권자가 그와 같은 투철한 의지를 천명하면 된다.
하지만 어리석은 정치꾼들의 투전판처럼 변질되고 있는 거래소의 이사장 인선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은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