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정치권력 중심 부상…옐런 차기 의장 과제는
[뉴스핌=노종빈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23일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지난 1913년 12월 23일 당시 우드로우 윌슨 미국 대통령의 연방준비법(The Federal Reserve Act) 서명으로 출범한 연준의 탄생 과정은 세계 정치사에서도 쉽게 보기드문 대타협의 백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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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美연준 홈페이지> |
하지만 중앙은행이면서도 권력이 집중되지 않은 태생적 한계를 지닌 탓에, 연준은 필연적으로 자본시장과 정치권이라는 두 가지 핵심 권력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험난한 역사의 굴곡을 맞닥뜨리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 연준이 필요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잦은 물가급등(인플레이션)과 이로 인한 금융사고 때문이었다.
미국 독립혁명 전후 처음 발행된 지폐는 '대륙의 화폐'이라는 의미로 '컨티넨탈(continental)'이라 불렀는데 극심한 인플레 때문에 돈가치는 급락을 거듭하기 일쑤였다.
아직도 '컨티넨탈보다 못한(not worth a continental)'이라는 표현은 '돈가치가 거의 없는, 무가치한'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곤 한다.
또한 지역마다 저마다 필요에 따라 은행들이 제각기 난립하다 보니 주정부 공인은행과 독립은행이 각각 존재했다. 불경기나 혼란, 전쟁 등을 겪으면서 금융위기와 뱅크런 등의 사고가 잦다보니 미국 시민 모두가 금융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 주목할만한 인물 '벤자민 스트롱'
하지만 어떤 형태로 개혁을 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결국 은행들을 관리하고 금융 안정성을 유지하는 중앙은행의 필요성이 구체적인 입법안의 틀로 마련된 것은 수십년이 지난 1907년 금융위기 직후였다.
은행자산가들의 지지를 등에 업은 공화당이 주장하는 중앙은행법안이 먼저 만들어졌으나 민주당은 은행가들이 아닌 공공이 중앙은행을 관할할 수 있기를 강력히 원했다. 4년 여간의 논란 끝에 1912년 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 윌슨 대통령이 공화당과의 부단한 합의 노력 끝에 균형이 이뤄진 연방준비법에 서명하면서 연준은 탄생했다.
초기 연준 시대에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은 1914년부터 1928년까지 뉴욕연방은행 총재를 지낸 벤자민 스트롱이다. 그는 금을 팔고 사서 실세금리를 조정하는 것의 모순을 느끼게 됐고, 1923년 직접 국채를 매입해 금리를 떨어뜨리는 방식을 시험하게 된다.
현재 연준이 벌이고 있는 3차례에 걸친 양적완화의 기본적 틀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연준은 단순한 금융사고시 뒷처리로 자금을 공급해주는 기능에서 벗어나 금융시장의 상황을 예측하고 조절하는 기능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 한국전쟁, 美 연준 독립성에 기여
하지만 스트롱 총재의 사망으로 금융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지고 결국 증권시장 몰락과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수모를 겪는다. 이를 해결한 것은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경제부흥 정책을 펼친 프랭클린 루즈벨트 행정부였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부터 한국전쟁의 기간 중 연준은 점차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1950년대 초 전시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낮은 금리를 유지하길 바랬으나 연준은 인플레를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장하며 맞선다. 논란은 합의끝에 결국 연준의 판정승으로 끝났고 이는 연준이 중앙은행으로서 정치적 독립성을 확립하는 기틀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 초 재선을 노리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경제 회복과 실업률 하락이라는 자신의 공약을 달성하기 위해 당시 아더 번스 연준 의장에게 금리 인하를 요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실제로 번스 의장 휘하에서 연준은 1970년 1월부터 1972년 7월까지 금리를 무려 4%p(포인트)나 인하했다. 이후 10여 년간 세계 경제는 인플레와 함께 두번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암울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아직도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당시 연준의 금리인하 배경이 경제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는지 닉슨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가 논란의 대상이다.
◆ '두 자릿수 인플레' vs '글로벌 금융위기'
1970년대말~1980년대 초까지 미국의 살인적인 두 자릿수 물가를 잡은 것은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었다. 이후 1987년부터 2006년 초까지 약 20년간 재임한 앨런 그린스펀 의장 시대에 연준은 대안정기(Great Moderation)를 누리기도 했으나 결국 2007년 거대한 레버리지의 함정(과도한 유동성 확대)에 빠진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사상 유례없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이로 인해 2006년 취임한 벤 버냉키 의장이 3차례의 양적완화를 거쳐 자산매입 규모를 4조달러까지 부풀려 마치 '돈을 헬리콥터로 날린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금융산업 발전 과정에서 가장 획기적인 혁신은 9·11사태로 인해 이뤄졌다. 미국은 여전히 개인수표 거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연준의 요구에 따라 미국 정치권은 9·11사태 직후 '21세기를 위한 수표 결제법'을 통과시켰다. 2001년 당시만 해도 미국 금융권은 개인수표를 직접 수거 운송한 뒤 결제해 자금을 입금했기 때문에 타행수표의 경우 결제와 입금 처리까지 5~7일이 걸렸다.
하지만 이 법의 도입으로 전자 매체를 통해 스캔된 이미지만으로도 직접 결제가 가능해져 1일만에 입금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 연준, 100년의 '어두운 역사'…옐런 차기의장에 기대
결국 연준의 지난 100년간은 어둠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과 정치 권력의 중심에서 연준이 부각되는 시점은 어김없이 금융 시스템이 총체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순간이었다.
이는 내년 초 버냉키 의장의 후임으로 연준 수장의 막중한 권한과 책임을 이어갈 재닛 옐런 차기 의장 지명자에게 기대와 관심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서부 개척시대 무법자들이 은행을 강탈하는 시대는 사라졌지만 오늘날 21세기에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유사한 불신은 어떤 의미로든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이다.
[뉴스핌 Newspim]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