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장주연 기자] 보기엔 여리여리한데 마냥 말랑말랑하지는 않은 사람. 배우로서 선을 지키면서도 상냥한 사람. 이런 조금은 낯간지러운 표현들을 그에게 늘어놓았다면 아마 살짝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을 거다.
영화 ‘우는 남자’ 홍보에 한창인 배우 김민희(32)와 마주했다. 예쁘다는 인사에 “저 예뻐요?”라며 장난스럽게 되묻는 그에게서 어딘가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싱긋 웃는 미소에서는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묻어났고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실어 나르는 말에는 확실히 여유가 있었다.
김민희가 선을 보인 ‘우는 남자’는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던 킬러 곤이 조직의 마지막 명령으로 타깃 모경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임무와 죄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내의 내면연기와 살벌한 액션이 어우러진 이 영화는 ‘아저씨’(2010)로 원빈 신드롬의 정점을 찍은 이정범 감독의 신작이다. 장동건이 캐스팅되면서 시작부터 화제를 모은 이 영화. 김민희는 한순간에 남편과 딸을 잃고 희망을 놓아버린 모경으로 프레임 속에 들어왔다.
“인물이 멋있었어요. 특히 모경이 영화 안에 녹아있어서 마음에 들었죠. 특히 내면적으로 깊이 들어가는 부분에 많이 끌렸어요. 모경이란 인물이 심장은 멈췄는데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숨은 쉬지만 너무 힘들어서 죽어있는 거죠. 그런 감정적인 게 와 닿았어요. 물론 외적으로는 이정범 감독 작품이라 기대도 많이 컸고요.”
인물의 내면에 끌렸다는 김민희는 모경을 통해 또 한 번 물오른 감성연기를 선보였다. 김민희가 영화의 감성적인 부분을 모두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깊은 절망에 빠진 모경을 연기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장면이 감정 신이었던 탓에 체력소모도 심했다. 게다가 아직 결혼도 안 한 여자가 다섯 살 아이를 잃은 모정을 표현하는 게 어디 만만했겠나.
“감정이 너무 어둡고 깊이 들어가 표현하기 힘들었죠. 하지만 어차피 선택한 거니까 그 정도 힘든 거쯤이야 버텨야죠. 의외로 모성 연기는 문제되지 않았어요. 모성애 역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고 시나리오만 봐도 느낄 수 있어서였죠. 모성애라고 특별히 다른 감정을 주기보다는 마음에서 느끼는 대로 연기했죠. 경험이 있어야 연기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연기는 마음으로 하는 거니까요. 마음이 느끼고 이해가 되면 전혀 문제 없죠. 관객 역시 짚고 넘어가진 않을 듯해요.”
사실 그에게 이런 묵직한 감정 연기는 낯설지 않다. 언젠가부터 김민희의 필모그래피에서 힘들고 무거운 감정이 전제된 연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혹시 일부러 이런 작품만 고르는 거냐 물으니 “제가 고르는 거니 100% 우연의 일치는 아니지 않겠냐”며 웃었다.
“새로운 도전의 의미로 선택한 건 아니에요. 전 일상을 포함한 모든 것이 익숙한 게 좋거든요. 다만 겪지 않은 일을 연기하는 게 재밌긴 해요. 만들어내는 재미가 크죠. 그러다 보니 전작에서도 그런 역할을 많이 했고요. 특별한 상황에 빠진,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니, 재밌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연기에 있어서 도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회가 온다면 도전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겠지만요.”
평범하고 익숙한 게 좋다는 김민희의 일상은 그야말로 소탈하다. 친구들과 만나는 걸 즐기고 건강관리에 부쩍 신경을 쓰는 여느 삼십 대와 다를 게 없다. 손꼽히는 패셔니스타지만 나이가 들면서 소유욕이 없어지고 자연스러운 게 좋아진단다. 그러고 보니 스크린 속 김민희 역시 꽤 오랜 시간 평범한 모습이었다. 보이는 데 예민할 수밖에 없는 여배우인데도 화려하기는커녕, 늘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이다. 예뻐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화면에 더 예쁘게 나와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배우는 외적인 걸로 평가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는 게 진짜 배우의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요. 그 안에 있는 것을 보여주는 배우가 더 아름다우니까 지금 꾸미고 나오지 않는다는 게 아쉽고 안타깝진 않죠. 그리고 그런 건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이 아닌 행사장이나 화보와 같은 다른 곳에서 얼마든지 보여줄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
조근조근 제 생각을 풀어놓는 그를 보자니 이젠 정말 뼛속까지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샌가 이름 앞의 온갖 수식어를 ‘배우’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게 만든 게 단순히 김민희의 물오른 연기력만은 아닌 듯했다. 패션의 아이콘이던 김민희는 어느새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쓰는 충무로 대표 배우로 우뚝 섰다.
“드라마 ‘굿바이 솔로’(2006) 할 때 배우의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렇게 꾸준히 천천히 밟아 왔고,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쭉 가고 싶어요. 여기서 끝은 아니니까, 또 끝이란 건 없으니까요. 그냥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면 배우 김민희라는 어떤 그림이 만들어지겠죠. 아직 다음 작품을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하고 싶고 많이 하려고요. 지금이 연기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제일 좋은 시기잖아요(웃음).”
“이정범 감독님, 앞으로도 쭉~ 액션영화 하셨으면 좋겠어요.” |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