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Savoir vivre(사브와르 비브르), 직역하면 ‘삶을 알다’, 의역하면 ‘삶을 향유하다’. 그의 가녀린 발목에 새겨진 타투 글귀다. ‘나만의 삶을 살다’란 뜻을 품은 그의 처녀작 제목은 Vivre sa vie(비브르 사비). 이 두 문장보다 그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들이다. 동시에 제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라며 마주한 배우 윤진서(31)가 활짝 웃었다. 영화 ‘산타바바라’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스크린 속 모습처럼 매 순간 표현에 솔직했다. 배우란 직업에 애정이 가득했지만, 공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제 삶을 다른 이들의 기호에 맞춰 억지로 재단하는 법이 없었다. 흔히 대중들이 말하는 ‘윤진서만이 낼 수 있는 분위기’라는 건 아마도 그의 이런 마인드에서부터 나온 모양이다.
윤진서와 배우 이상윤이 함께한 ‘산타바바라’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일에서만큼은 완벽한 광고쟁이 수경과 감성 충만한 낭만주의 음악감독 정우의 달콤짜릿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극중 윤진서는 수경 역을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실제 저랑 수경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조성규 감독님이 이름도 제 본명인 수경으로 바꿨죠. 감독님이 ‘너랑 똑같아’면서 바꾸더라고요. 원래 이름은 다른 거였거든요. 그렇다고 절 따로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는 아니고요. 돌다 돌다가 캐스팅이 안 돼서 날 쓴 건가?(웃음) 아무튼 감독님 역시 제게 디렉션줄 때 평소대로만 하라고 하셨죠. ”
수경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인정하는 그에게 (영화의 장르가 장르인 만큼) 혹여 연애 스타일도 닮았느냐는 질문을 덧붙였다. 사랑보다 일이 더 중요한 극중 수경은 ‘사내연애는 절대 안 된다’는 또렷한 연애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 속 수경은 대번에 “연애에다 왜 관을 씌우느냐”며 깔깔깔 웃었다.
“에이~ 연애관을 왜 만들어요. 그게 지켜질 거 같아요? 연애를 막상 하면 그게 지켜지던가요? 저는 애초에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요. 이상형도 글쎄요. 그저 친구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어요. 같이 여행 다니고 내가 글을 쓸 때 옆에서 뭘 할 수 있는 사람, 창의적인 친구 같은 남자랄까? 물론 극중 정우도 매력 있고요. 일단 악의가 없으니까(웃음). 여자 잘 속이면서 뒤에서 거짓말하는 남자, 별로잖아요.”
이상형으로 함께 여행을 갈 수 있는 남자를 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여행 떠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타공인 여행 마니아다. 그러니 ‘산타바바라로 떠난다’는 이번 촬영 조건 역시 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갔을 터. 실제 윤진서는 ‘산타바바라’ 촬영 이후 영화 ‘경주’, ‘태양을 향해 쏴라(가제)’, 드라마 ‘상속자들’ 촬영을 모두 마무리한 뒤 다시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그리고 때로는 부대끼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그곳에서 7개월을 머물렀다.
“사실 산타바바라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다는 거 말고는 전혀 아는 게 없었어요. 자연스럽고 편안하면서도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산타바바라에 가서 촬영한다는 거 자체로 너무 즐거웠죠. 거기다 캘리포니아는 제게 판타지적인 도시거든요. 나의 환상의 공간에 이렇게 재밌는 사람들하고 간다니, 마치 지인과 소풍 가는 기분이었죠. 거기다 영화까지 찍으니까 금상첨화였어요(웃음).”
윤진서를 여행 마니아라고 흔쾌히 말할 수 있는 건 호화 여행을 즐기지 않는 그의 성향 때문이기도 하다. 스물한 살 때부터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윤진서는 배낭 하나 메고 홀연히 떠나는 걸 좋아한다. 여배우가 구태여 왜 힘든 여행을 즐기는 건지 궁금해졌다. “배낭 메는 게 어째서 힘든 거냐”고 되레 반문하던 그는 이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력셔리 한 여행은 많은 곳을 못 가보잖아요. 배낭이 더 간단하기도 하고요. 저처럼 장기 체류자들은 거기 사는 사람처럼 있다 와야 해요. 물론 저 역시 짐이 많으면 여행용 가방 끌어요(웃음). 사실 전 굳이 평생을 한 사람이 한 나라에만 살아야 하나란 생각이 있어요. 호기심이 많기도 하고요. 한 발 한 발 내 힘으로, 내 의지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는 것에는 설렘과 두려움, 기쁨이 공존하죠. 어떻게 보면 그런 의미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최고죠.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어요(웃음). 여행 다니면서 연기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 꼭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윤진서는 끊임없이 유쾌하게 웃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상상한 적이 없었던 터라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더니 그는 단박에 “다들 그런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능청을 떤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타인이 바라본 윤진서는 확실히 건강한 배우였다. 외적으로 보는 탄탄한 몸매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맑고 깨끗한 생각은 상대마저 정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저의 건강하고 밝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봐줬으면 해요. 저를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웃음). 제가 웃으면 되게 신기해하고요. 영화에서 그런 역할을 많이 해서 그런가 봐요. 근데 저 진짜 잘 웃거든요. 그러니 대중들 역시 저를 잘 웃고 건강한, 그렇지만 배우라는 직업에서만큼은 굉장히 심각한 삶을 살고 있는 이제 막 삼십 대에 접어든 배우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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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