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배우 하정우(36·김성훈)는 눈빛만으로도 관객의 감정을 움직일 줄 아는 영리한 배우다. 동시에 독특함과 신선함을 가진 재능 있는 감독이자 전시회는 물론, 영화 시나리오 북 표지까지 직접 그리는 꽤 능력 있는 화가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를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 지어 생각하기가 더욱 조심스러웠다.
영화 ‘군도:민란의 시대’(군도) 개봉을 앞두고 하정우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먼저 도착해있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빡빡한 일정 탓에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얼마 후 마주앉은 하정우는 금세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피로는 잠시 잊은 듯 밝은 모습이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하정우 특유의 유쾌함과 말발(?)은 빛을 발했다. 덕분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하정우가 ‘군도’로 윤종빈 감독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췄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2005), ‘비스티 보이즈’(2008),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에 이어 네 번째다. 23일 개봉하는 ‘군도’는 조선 후기, 탐관오리들이 판치는 망할 세상을 통쾌하게 뒤집는 의적들의 액션 활극이다.
“영화는 의도한 대로 잘 나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드라마적인 대서사시를 기대했다면 간극을 느낄 수는 있죠.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부끄럽지만, ‘군도’는 분명 오락영화고 오락영화로서 가치와 미덕은 있다고 확신해요. 사실 러닝타임이 좀 길잖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짧게 느껴지더라고요.”
극중 하정우는 최하층 천민인 백정 출신 돌무치를 열연했다. 돌덩이 같은 몸과 장사의 힘을 가진 돌무치는 군도에 합류한 후 쌍칼을 휘두르는 군도의 에이스, 도치로 거듭나는 인물이다. 하정우는 순진한 돌무치가 군도의 신 도치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 나게 그리며 1인 2역에 가까운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판타지적 성향을 띠는 영화와 맞게 돌무치와 도치 역시 동화나 전설 속에 나오는 느낌이길 바랐어요. 전 원래 인물을 디자인할 때 다른 캐릭터를 모델링해서 제 식으로 표현해요. 이번엔 영화 ‘핸콕’의 존 핸콕(윌 스미스)과 ‘캐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조니 뎁)를 생각했죠. 과거 개그맨 윤택 씨가 했던 맞은 후 한참 뒤에 통증을 느끼는 개그도 접목했고요. 여기에 지능은 조금 모자라지만 강렬한 영화 ‘잭’의 잭 포웰(로빈 윌리엄스), 멍하고 텅빈 눈빛의 ‘12 몽키즈’ 제프리 고인스(브래드 피트)도 떠올렸죠. 걸음걸이는 가수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를 생각하며 리듬을 줬고요. 전체적으로 조윤과 완전히 대비될 수 있도록 했어요.”
자신이 모델링한 캐릭터를 줄줄 읊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간 건 확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보는 동안은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던 캐릭터들이었다. 도치와 돌무치가 하정우만의 캐릭터로 완전히 다시 태어난 탓(?)이다. 물론 이는 그의 연기가 얼마나 완벽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영화가 베일을 벗은 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은 이는 상대역 강동원이었다. 그간 윤종빈 감독 영화에서 하정우가 부각됐던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인간적으로 섭섭할 법도 한데 그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원래 윤 감독 작품의 캐릭터 특징이 다 두 번째 롤이 더 도드라져요. 전작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전 작품에 대한 믿음과 윤 감독에 대한 신뢰가 아주 컸어요. 반면 도치는 그간 제가 보여줬던 묵직한 인물과 달리 가볍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됐다는 점에서 끌렸어요. 도치는 영화의 코미디 담당이죠. 그래서 저를 시원하게 낮췄고요. 더군다나 전 처음부터 배우 하정우로 이 팀에 들어간다기보다 윤 감독을 도와서 전체적으로 서포트하고 싶었어요. 캐릭터도 재밌고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이 작품에 일조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죠.”
하정우의 말처럼 그는 이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쏟았고 캐릭터를 위해 많은 고충도 겪었다. 익히 잘 알려진 (매일 면도를 해야 하는) 민머리 분장은 물론이거니와 태양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했다. 게다가 호쾌하게 쌍칼을 내지르기 위해 수많은 연습을 거듭했고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를 위해 승마도 배웠다.
“민머리로 촬영하면서 태양열의 놀랍고 신비로운 힘을 느꼈어요(웃음). 머리카락이 있고 없고 차이가 어마어마했죠. 저장된 열이 밤까지 뿜더라니까요. 쌍칼 돌리는 건 차에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 나는 대로 연습했고 말은 알다시피 제가 공포증이 있어서 심리 치료를 병행했어요. 마구간 가서 교감 나누면서 ‘얘들은 귀요미 아가들’이라 생각했죠(웃음). 근데 말 타고 14시간 동안 촬영하니까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이 든 거예요. 2주 동안 못 걸었어요. 아니다~ 고생한 이야기는 재미없으니까 그만해야겠다(웃음).”
힘들었던 이야기는 그만하자던 그는 이내 앞으로 이어갈 희망찬(?)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해 새로운 작품으로 대중을 만나는 하정우는 ‘군도’ 개봉을 앞둔 지금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영화 ‘허삼관 매혈기’의 촬영이 전라남도 순천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 어디 그뿐이랴. ‘허삼관 매혈기’ 촬영이 끝나는 오는 10월부터는 최동훈 감독의 신작 ‘암살’에 합류할 예정이다. 듣기만 해도 빠듯한 일정에 힘들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젊은 나이에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힘들다기 보다 재밌어요. 지금 ‘허삼관 매혈기’는 특히나 제가 연기하고 제가 커트하는 거라 더 재밌죠. 하지원 씨도 엄청 재밌어하고요. 스태프들 역시 제가 감독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 것에 이제 익숙해졌죠. 아무튼, 조만간 저의 작품 세계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감독 하정우에 대해서 지금은 살짝 기대치를 낮추겠어요. 그리고 혜성처럼 내년 구정에 등장할 겁니다(웃음).”
하정우가 들려주는 ‘군도’ 뒷 이야기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