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자율협약 이전 여신이 문제" vs 산은 "이미 구조조정 상황"
[뉴스핌=김선엽 기자]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상 초유의 징계를 사전 통보 받은 KDB산업은행이 충격에 빠졌다.
해당 기업을 살려야 한다는 당국과의 암묵적인 공감대 속에 기업에 대한 지원과 구조조정을 진행했는데, 뒤늦게 가혹하게 감독규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누가 과연 앞으로 기업지원과 구조조정의 총대를 메겠냐는 항변을 내놓고 있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은 STX그룹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산은 임직원 18명에 대해 제재를 사전 통보했다. 이후 금감원은 당사자의 해명자료를 접수하고 제재심의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김한철 당시 수석부행장을 비롯해 STX 구조조정과 관련한 전·현직 부행장, 부서장, 팀장 등이 모두 제재대상에 올랐다.
징계 사유는 산은이 STX에 대한 여신심사를 부실하게 진행했다는 것으로 최초 여신 설정 때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STX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선박건조 현황을 따지지도 않고 선수금을 지급해 이 돈이 유용되도록 단초를 마련했다는 지적이다.
STX 강덕수 전 회장은 2조3000억원 상당의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이를 이용해 9000억원의 사기성 대출을 일으킨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상태다. 이 여파로 주채권은행인 산은은 지난해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산은이 애초에 여신심사를 제대로 했으면 이 같은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번 징계는 STX에 대한 구조조정과는 무관하다"며 "산은과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을 체결(2013년 7월)하기 이전인 2012년 말의 여신심사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반해 산은 쪽은 징계사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명시적으로 자율협약을 체결하긴 했지만, 이미 그전부터 STX그룹은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었다는 것이다.
'STX그룹을 살려야 한다'는 당국과 채권단 간의 교감에 의해 움직였는데 이제 와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가혹하다는 항변이다.
산은 관계자는 "국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기업에 대해 채권단이 사소한 것을 문제 삼아서 자금을 회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회계 관련해서도 회계법인이 정식으로 감사를 통해 내린 결론을 우리가 자체감사를 통해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정을 따르지 않은 선수금환급보증(RG) 지급과 관련해서는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진척상황에 따라 RG를 지급한다고 하지만, 여러 척의 배가 동시에 건조되는 상황에서 선수금의 전용을 감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며 "이렇게 타이트하게 규정을 적용하면 과연 어떤 금융기관이 RG를 지급하려 하겠는가"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지난해 6월과 8월에 실시한 검사에서는 지적받지 않았던 것을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걸고넘어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한편 강만수 전 산은 회장에 대한 징계가 배제된 것이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강 전 회장이 신용위원회의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은행 여신과 관련해 최고 책임자였던 만큼 책임을 물으려면 강 전 회장에 대한 징계도 포함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금감원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이 산은 회장이긴 했지만, 여신심사에 대해서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징계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