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헤이즐'의 주인공 쉐일린 우들리 [사진=AP/뉴시스] |
쉐일린 우들리는 존 그린의 베스트셀러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를 영화화한 ‘안녕 헤이즐’로 또 한 번 진화에 성공했다. 그간의 화끈하고 거침없는 이미지를 감쪽같이 지워버린 그는 작정한 듯 객석의 감성을 마구 자극하며 눈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관능과 순수의 경계를 오가는 쉐일린 우들리. 그가 이번에 연기한 헤이즐은 어린 시절부터 암과 싸워온 10대다. 인생은 짧고 부질없으며 인간이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찍 알아버린 헤이즐. 암세포가 폐까지 퍼져 산소통을 끌고 다니는 헤이즐은 우연히 만난 어거스터스(안셀 엘고트)에게 처음 사랑을 느낀다. 영화는 언제 끊어질지 모를 생명의 끈을 잡은 채 사랑에 눈뜨는 헤이즐을 통해 진정한 삶을 생각케 한다.
암세포가 폐까지 전이돼 호흡기에 의지하는 헤이즐. 어려서부터 죽음과 마주한 그는 매사 냉소적이지만 어거스터스를 만나고부터 달라진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헤이즐은 암 때문에 일찍 철이 들어요. 언제 죽을지 몰라 좀 냉소적이죠. 그가 툭툭 던지는 무미건조한 유머에 진심으로 공감했어요. 같은 처지라면 저도 그랬을 거거든요. 영화는 암에 걸린 사람들이 나오지만 결코 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죽음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삶을 찬미하거든요. 삶의 끝자락에 서 있으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헤이즐을 연기하며 깊이 빠져버렸죠.”
‘안녕 헤이즐’의 원작소설은 우리나라를 비롯, 세계적으로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있다. 당연히 주인공을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도 원작을 여러 번 읽은 열혈팬이다.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는 지금까지 읽은 책 중 최고였어요. 존 그린은 10대에게 당당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인물이죠. 전 그가 청소년 목소리에 실제 귀 기울이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타인에게 공감하고 진심으로 관심을 갖기에 10대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거죠.”
'다이버전트'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쉐일린 우들리와 안셀 엘고트(오른쪽)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안셀 엘고트와는 호흡이 척척 맞았어요. ‘다이버전트’ 때부터 친했기에 막힘이 없었죠. 우린 그때부터 잘 통해요. 무엇보다 서로를 자랑스러워하죠. 영화 두 편을 연달아 찍었기에 친구처럼 편해요. 상대 배우와 어색함을 깨고 친해지는 단계를 전부 건너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모든 에너지를 연기에 쏟아부을 수 있었죠.”
말기암 환자를 연기한 쉐일린 우들리는 헤이즐을 이해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암 환자를 찾아갔고 이야기를 나누며 캐릭터를 다듬었다. 그 과정에서 귀중한 가르침도 얻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커피도 마시며 점심도 먹었어요. 영화에 나오는 암 환우 모임에 등장한 분들은 실제 암에 걸렸거나 치료된 사람들이에요. 다만 우리는 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삶에 대해 진지하게 교감했어요. 환자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저 인간으로서 상대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죠. ‘너도 내 10대 시절하고 똑같구나’ ‘너도 불안하구나. 나도 그랬어’ ‘암이 너라는 사람의 핵심은 아니야’ 등 다양한 조언을 듣고 눈물이 핑 돌더군요. 암이 사람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어요. 환자들도 삶의 과정을 겪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란 걸 말이죠.”
헤이즐과 어거스터스가 여행을 떠난 암스테르담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영화 ‘안녕 헤이즐’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 등장한다. 괴팍한 작가 피터 반 호텐(윌렘 대포)의 팬인 헤이즐이 어거스터스의 도움으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아름다운 도시 암스테르담에서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교환한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그러니까 열여덟 살 때 네덜란드로 배낭여행을 갔어요. 안셀 엘고트는 암스테르담이 처음이라 제가 여기저기 안내해줬죠. 암스테르담은 훌륭한 역사가 함께 숨쉬는 근사한 곳이에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안네 프랭크가 숨었던 ‘안네의 집’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안네가 당시 겪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훌륭한 배우, 감독과 작업해온 쉐일린 우들리는 롤 모델로 연기파 케이트 윈슬렛을 꼽았다. ‘안녕 헤이즐’에서 씩씩하고 자상한 엄마를 연기한 로라 던과 ‘디센던트’로 같이 작업했던 알렉산더 페인 감독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로라 던은 ‘안녕, 헤이즐’을 통해 처음 만났어요.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요. 그 유명한 ‘쥬라기 공원’도 안 봤으니까요. 로라 던은 유명하고 뛰어난 여배우기 전에 인간으로서 정말 훌륭해요. 극중에서나마 가족이 돼 영광이었죠. 알렉산더 페인 감독도 마찬가지에요. ‘디센던트’로 함께 작업하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분인데 한 인간으로서 그를 알아갈 수 있어 좋았어요. 아, 케이트 윈슬렛도 좋아해요. 훌륭한 롤 모델이죠. ‘다이버전트’에서 만나기 전에도 케이트 윈슬렛의 작품은 많이 봤어요.”
말기암 환자의 사랑을 소재로 삼으면서 죽음보다는 삶의 의미에 집중한 영화 '안녕 헤이즐'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농부가 됐을 거라며 웃음을 터뜨린 쉐일린 우들리.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는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그는 인생을 즐기고 찬미하는 헤이즐처럼 살고 싶다며 웃었다.
“배우를 안했다면 하와이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었을 거에요. 식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씨앗을 심고 자라는 걸 지켜보고 수확하는 걸 좋아해요. 먹을 것도 사랑하고 관심이 많아요. 다만 배우든 농부든 하루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우리 영화는 세상에 확실한 것은 없고 삶 역시 공평하지 않다고 이야기해요. 두려움과 증오, 불안에 휩싸여 하루를 보내지 말고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말하죠. 맞아요.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이 영화를 찍고 삶을 더욱 아끼게 됐어요. 세상 모든 것을 사랑과 연민, 친절함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게 삶의 유일한 의미이기 때문이죠.”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