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이란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외모와 차분한 말투. 지난달 막 오른 연극 ‘프라이드’의 올리버 역으로 활약 중인 배우 박은석을 만났다. 박은석 세 글자가 낯선 사람도 있겠지만, 이미 대학로에서는 모르는 사람 없는 유명인이다. 박은석의 출연 회차는 티켓이 없어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 하니 뜨거운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전작인 ‘히스토리 보이즈’와 ‘수탉들의 싸움’에 이어 또 한번 동성애자 역할을 맡은 박은석은 항간의 우려에도 의연하다. 도리어 도전의식과 흥미를 느낀다 말하는 그의 어조는 확신에 차 있다. 여기에 ‘프라이드’를 고민 없이 선택했던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동성애를 다룬 연극을 연이어 한다는 데서 오는 갈등은 없었어요. 좋은 작품이란 점이 중요했거든요. 두 연극(‘수탉들의 싸움’과 ‘프라이드’)에 공통된 부분이 일부 있지만, 그건 부차적인 거예요. ‘수탉’의 존과 ‘프라이드’의 올리버는 둘 다 게이지만, ‘다른 인물’이니까요.”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두 시대를 각각 살아가는 올리버와 필립, 실비아 세 인물을 통해 사회의 억압과 편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올리버 역을 맡은 박은석은 1958년의 자유로운 동화작가인 올리버와 2014년의 방탕한 성생활을 하는 올리버로 분해 사실상 1인2역을 연기한다.
“둘 다 중점을 둔 건 시대가 개개인에게 주는 압박감에 영향을 받는 인물이란 거예요. 1958년은 동성애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대였고, 성소수자들이 어떤 커뮤니티를 만들고 집단에 속해 있기 보단 혼자 숨고 세상의 압박을 힘들게 버텨나갔잖아요. 2014년에는 많은 부분이 개방됐지만, 사회가 개인의 자유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여전히 존재하죠. 그런 점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캐릭터에 다가가려 했어요.”
두 시대에서 펼쳐지는 스토리는 극중 인물들의 대사나 동선을 따라 교차하는 부분이 있다. 1958년 필립에게 강간당한 올리버는 가슴에 상처를 입고, 이같은 마음의 병은 2014년의 올리버에게 악영향 끼친다. 2014년의 올리버는 원인 모를 결핍에 시달리고, 이같은 상처와 결핍이 해소되는 과정이 펼쳐진다. 박은석은 2014년 올리버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충족되지 않는 욕구와 그 욕구의 해소를 표현해야 했다. 이같은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 과하게 가기로 결정한 것은 두 시대 올리버 사이에 갭을 주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감정 소모가 너무 커요. 장면전환 때마다 다른 캐릭터에 감정을 맞추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다행인 건 체력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다는 점이에요. 안 믿으시는 것 같은데 정말로(웃음). 그 동안 공연을 많이 해왔는데, 그 중에는 인터미션 없이 두 시간 이상 무대에 올라야 했던 작품도 있었어요. 그 때와 비교하면 ‘프라이드’는 중간에 쉬는 시간도 있고 올리버 없이 필립과 실비아만 등장하는 장면도 있으니까요.”
무대 위 사건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평가는 관객마다 다를 수 있다. 해석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누군가는 올리버를 향해 연민의 눈길을 보낼 것이고, 혹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볼 수도 있다. 박은석은 올리버의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용기에 주목해 달라고 말한다.
“1958년 올리버의 태도와 용기를 높게 사주셨으면 좋겠어요. 손가락질을 받고 자신을 숨겨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걸 찾는다는 것에 대한 프라이드를 가진 인물이에요. 금기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프라이드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요. 소중한 것을 포기할 수 없다는 올리버의 용기가 잘 보였으면 좋겠어요. 2014년 올리버의 경우는 자신(올리버)의 결핍을 극복해가는 과정과 변화에 대한 희망이 잘 나타났으면 좋겠고요.”
일곱 살 미국에 이주한 뒤 약 15년을 그곳에서 자란 박은석은 배우의 길을 걷고자 귀국을 결심, 서울예대 방송연예과를 졸업하고 대학로에 뛰어들었다. 지난 2013년은 그동안 떨궜던 피와 땀이 빛을 보는 한해였다. 지난해 ‘트루웨스트’, ‘쩨쩨한 로맨스’, ‘햄릿’ 등으로 팔색조 매력과 배우로서 가능성을 증명한 그는 올해 ‘히스토리 보이즈’, ‘수탉들의 싸움’, ‘프라이드’를 통해 연달아 흥행에 성공하며 입지를 굳혔다.
“연극을 선택한 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연기가 무척 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 무작정 영화사 스태프로 1년간 일하기도 했어요. 맨몸으로 한국에 와서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했죠.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뒤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는지 처음 알았어요. 카메라 뒤의 입장과 앞의 입장을 모두 알게 됐고, 그 때의 경험이 제게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방황하던 시기에는 방송에도 한번 출연 했고요. 연극을 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죠. 연극을 시작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요. 전 지금도 누구에게나 추천해요. 연극 세 작품은 꼭 해보라고.“
“제 꿈에는 끝이 없어요. 배우로서의 성공에서 나아가 영화제작이나 프로듀싱도 하고 싶고, 대한민국 문화의 다양성과 수준을 올리는 데 있어서도 기여하고 싶고요. 의류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건이 되면 브랜드도 내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절반이라도 하면 성공일 것 같아요(웃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뉴스핌 Newspim] 글 장윤원 기자 (yunwon@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