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국악 군가 〈국군 아리랑〉을 녹음했다. 남자 소리꾼 1명, 여자 소리꾼 1명을 섭외했다. 10시간 남짓 대금, 장구, 북, 태평소 등 11개 기악을 녹음했다. 마지막 녹음 절차는 소리였다. 녹음에 참여한 모든 인원들이 지쳐갈 즈음 따∼아∼악∼딱 뭔가를 치는 소리와 함께 확 트인 노래가 들렸다. 사철가였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데가 있느냐. 봄아 왔다가 가려거든 가거라.....’. 천구성이었다. 목소리에서 묘한 향기가 났다.
목소리에서 묘한 향기가 나는 소리꾼 전태원은 90년생이다. 경북 포항 출신 비개비(非甲)다. 포항 송도초등학교, 영일중학교, 포항예술고등학교, 중앙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어려서는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합창을 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4학년 때 ‘KBS 열려라 동요 세상’에 출연하여 1등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소리의 길을 걷게 되었다. 취미로 시작한 소리가 전문 소리꾼의 길을 걷게 한 것이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돈 많이 드는 서양음악을 전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돈 적게 드는 국악을 전공했다.
12살 때 이명희로부터 흥부가를 배웠다. 13살 때는 장월중선의 딸 정순임으로부터 수궁가, 흥부가, 심청가, 유관순 열사가, 안중근의사가, 남도민요를 배웠다. 또한 장월중선의 아들 정경호로부터 김일구류 아쟁산조도 배웠다. 중학교 때 경주신라문화제 판소리 중등부 1등과 수궁가를 3시간에 걸쳐 완창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박동진 명창명고 대회’에 출전하여 판소리 부문 장원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2008년)는 국악협회가 주최한 판소리 대회에서 1등을 했고 흥부가를 2시간 30분에 걸쳐 완창 했다. 그리고 ‘32회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판소리부문 금상(문체부장관상)을 수상하여 예술 공익으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비개비는 개비의 절대 영역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 판소리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젊은 소리꾼 전태원은 진리 같은 이 말을 깨부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까만 어둠이 촘촘하게 내리고 있었다. 불빛이 하나 둘 켜졌다. 소리꾼 전태원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인터뷰 장소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맑았다. 눈동자도 맑았고, 이마도 맑았고, 치아도 뽀얗게 맑았다. 예술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조건인〈인물치레〉부터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첫 질문을 던지기 전 흥타령을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젊은 소리꾼은 흥타령 중 ‘꿈이로다.’를 가장 좋아한다 했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묘한 소리 향기가 사무실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 것 저 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이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을 꾸어서 무엇을 헐거나. 아이고 데고 어허 성화가 났네.....’. 가슴속에 기쁨이 꽉 차올랐다. 머리가 찬물에 헹군 것처럼 맑아졌다.
첫 질문을 던졌다. “요즘 어디에서 활동하고 있나요?”
“제과 전문그룹 해태 크라운에서 후원해 주는〈락음(樂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송추에 있는 아트벨리 크라운 해태 연수원 우리가락 배움터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매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날 출근합니다. 대표는 박영호(대금, 한예종 명예교수) 선생님이시고, 감독은 김진성(대금, 서울시립예술단원) 선생님 입니다. 단원은 약 23명 정도입니다. 주 평균 3회 정도 공연하고 있습니다.” 소리꾼답게 말을 꼭꼭 씹어 전달했다. 소설 토지의 전라도 출신 소리꾼 〈주갑〉이가 연상됐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끝나기 무섭게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25세라는 젊음의 혈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함이었다. “무엇이 좋아서 판소리를 합니까?”
“판소리 가사가 좋습니다. 심청가 중 곽씨 부인 대목은 감정을 울컥하게 합니다. 모든 소리가 그렇지만, 판소리는 유독 감정 전달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삶속에서 겪는 것들을 문학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사설의 완성도가 매우 높습니다. 강도근 선생님께서 ‘판소리는 60세가 되어야 그 맛을 낼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을 직접 겪어 봐야 판소리 사설이 비로소 몸에 들어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너무 어립니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면서 겪는 것들을 소리로 표현할 생각입니다.”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국악인들은 왜 자기 노래가 없습니까? 대중가수들은 모두 자기만의 노래가 있는데 국악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출연료가 대중가수들에 비해 싼 것 아닙니까?”
“김준호 코코엔터테이먼트에서 주관하는〈코코쇼〉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개그를 하는 과정에서 판소리로 소리해 주는 형식의 공연물입니다.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대중화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축적되다 보면 해결될 수 있을 것 입니다.
오는 12월 중 창작 판소리를 내 놓을 예정입니다. 제목은 〈출세가〉입니다. 사람들이 출세할 수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노랩니다. 판소리의 대중화와 더불어 현대적 감각이 살아 숨 쉬시는 창작 판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올 때 사회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유명한 국악인 선생님은 판소리 수업비를 비싸게 받습니다.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국악인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우선 당장 먹기 위해 저가 출연료를 받아가면서까지 공연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저도 이런 저런 곳으로부터 저가 출연을 제의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럽니다. 무료로 해주겠다고. 아예 돈을 안 받고 해주면 해주지 저가 출연료를 받고는 안하겠다는 것이 저의 철학입니다. 모든 국악인들이 이러한 자세로 수준 높은 국악 공연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악 공연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들이, 국악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얼과 혼이 들어있는 국악을 홀대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얼마 전 필자는 이태원 어느 찻집에서 고등학교 동창생과 차담(茶談)을 했다. 대화중 그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왜 하필 국악이냐?”고. 순간 뒷골이 무거워 졌다. 큼직한 돌덩이 하나가 마음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묘한 소리 향기가 나는 젊은 소리꾼 전태원과 사무실을 나섰다. 사무실 주변 고기 집으로 갔다. 소고기를 시켰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젊은 국악인을 나름대로 예우해 주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잘 익은 쇠고기를 안주 삼아 소주잔을 톡 털어 넣었다. “왜 하필 국악이냐?”는 고등학교 동창생 말이 소주와 함께 어금니에서 씹혔다.
전태원 같은 젊은 소리꾼이 있어 국악의 앞날은 밝고 또 밝다. ‘왜 하필 국악이냐?’는 빈정댐이 ‘정말 국악이 최고다!’라는 감탄사로 변해 울려 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촘촘하게 내려앉은 어둠을 뚫고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씩씩하고 아름다웠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