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유통속도 떨어져, 은행에만 쌓여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00%로 내려앉았다. 사상 최저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과 같다. 한은은 금리를 내려 경기가 부양되기를 바라고 있다. 또 글로벌 환율전쟁에서 원화 가치만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도 있다. 금리 인하의 긍정적인 면을 본 조치다. 일시적으로 경기를 부양할 수 있고, 부(富)의 효과로 주식,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가계부채 이자는 줄어 소비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부채만 늘고 경기 진작 효과를 장담할 수 없어 저금리의 부작용인 가계의 이자 소득 감소, 금융회사 수익 감소, 버블 심화 등을 야기할 것이란 지적이다.
특히, 글로벌 경기가 더욱 위축돼 우리나라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추가로 금리 인하를 해야 할 압박을 받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기준금리 1%대의 우리나라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시대와 맞서야 한다.
문제는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는 미국 금리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외국 자본은 금리가 싼 우리나라에서 철수해 미국으로 도피할 것이 분명하다. 해외 자본 유출이 무서운 이유는 그 가능성만 불거져도 엔화 약세 전망과 겹쳐지면서 외자는 썰물처럼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소규모 개방경제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저금리의 긍정적 효과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부작용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금융회사의 상황을 점검한다. 그리고 누가 저금리의 실익을 얻는지도 살펴본다. 저금리의 파도를 맞닥뜨리는 순서로 시리즈를 싣는다. <편집자주>
최근 10년 간 화폐유통속도 추이(분기) <자료:한국은행> |
[뉴스핌=김선엽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8월 기준금리를 내리며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지며 통화정책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불확실성 증가로 유동성이 실제 필요한 곳으로 가지 못하고 은행에만 차곡차곡 쌓인 결과다.
이에 한은이 8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50bp나 인하했지만 그 효과는 매우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17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화폐유통속도는 0.74다. 이는 10년 전인 2004년 2분기 0.96에 비해 0.22 낮은 수치다.
통화 및 유동성 지표 구성 금융상품 <자료 : 한국은행> |
화폐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통화량(M2)으로 나눈 수치로 한 단위의 돈이 일정 기간 동안 얼마나 자주 사용됐는가를 뜻한다.
쉽게 말해 만원짜리 한 장이 얼마나 많은 거래에 사용돼 돈의 주인이 바뀌었는가란 의미다.
화폐유통속도가 떨어졌다는 것은 한은이 통화량을 늘렸음에도 GDP 증가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직까지 올 3분기 GDP 통계가 발표되지 않아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8월 M2가 크게 늘어난 것에 비춰볼 때 화폐유통속도의 하락 추세는 최근에도 이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지난 8월 M2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7.6%로 4년래 최고 수준이다. 한은이 예상한 '6%대 후반'(9월 11일 발표 '8월중 금융시장 동향')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한은 경제통계국 관계자는 "8월 GDP증가율이 M2증가율에 비해 낮기 때문에 화폐유통속도 숫자를 구해보면 하락한 것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중자금이 기업의 설비투자 등 돈이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신 유동화가 용이한 요구불예금이나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2년 미만 금전신탁 등에 돈이 몰리고 있다. 한은이 금리를 두 번이나 내린 하반기에는 이 같은 경향이 심화될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임희정 연구위원은 "최근 상황이 불안하니까 금융과 실물 간의 관계가 약해져 금리전달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재정정책과 금리정책이 함께 가는 모양새를 취하기 때문에 정책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당국은 판단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매월 통화량(M2, 평잔) 변동 추이 <자료 : 한국은행> |
반면, 한은 쪽은 화폐의 유통속도 하락은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커 '돈맥경화' 상황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은 통화정책국 관계자는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통화량 목표제가 시행되던) 과거와 달리 화페유통속도가 떨어진 것만으로 돈이 돌지 않는다고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돈맥경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것들, 예컨대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원활한가 등을 살펴야 하는데 지금 기업대출은 늘고 있어 자금수요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 역시 10월 금통위 이후 "유동성 함정 상황은 전혀 아니다"라며 "8월 기준금리 인하의 파급효과가 어느정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