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중모드'.."투자·고용 확대에 힘 보탤 것"
[뉴스핌=이강혁 기자] 국내 경제의 저성장 우려가 높아지면서 경제활성화 촉진을 위한 기업인 가석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청와대에 기업인 가석방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는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일단 신중하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오너 기업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기업인 가석방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임에 따라 얼어붙은 경영활동 전반에 곧 봄날이 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기업인 가석방을 청와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은 현재 수감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 |
지난 9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기업인에게 다시 기회를 주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기업인 가석방 문제에 불을 지핀 이후 최 부총리는 긍정적인 방향에서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다. 최 부총리는 "침체 국면인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인 가석방과 사면이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그는 "기업인들이 죄를 저질렀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엄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은 경제살리기 관점에서 도움이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아직 청와대는 이와 관련해 이렇다할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임기 중에는 기업인 사면은 없다"고 못박은 바 있어, 기업인 사면 문제에 답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기업인 가석방 문제는 사면과는 다소 관점이 다르다. 굳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법무부 장관 주도로 가석방심사위원회의 허가 신청에 결정을 내리면 된다.
더욱이 기업인이 저지른 죄를 모두 없애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충실히 수감 생활을 한 기업인에 대해 말그대로 가석방을 하자는 것이 핵심이라 청와대 여론도 아예 부정적인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가석방 문제를 처음 거론했던 법무부 황 장관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가석방은 매달 60~100명씩 시행한다"며 "기업인 가석방도 원칙대로 할 것"이라고 추진 의지를 높였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기업인 가석방 시기가 내년 설날(2월 19일)이나 3·1절이 유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치권 역시 정부 수장들의 이같은 견해에 부정적이지 않다. 여당 수뇌부는 경제활성화 촉진을 위해 기업인 가석방 방안에 긍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야당 역시 최근 '땅콩 회항' 사건이 불거진 만큼 시기적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나, 자기반성이나 수형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차별이 있어선 안된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 수장들이 경제활성화 촉진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에 대해 기업인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정치권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사례를 통한 학습효과도 공감대 형성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사면을 받은 것이라 직접적인 경영복귀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경영 전반을 외곽에서 챙기면서 침체에 빠졌던 이라크 사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가 하면, 삼성그룹과의 초대형 빅딜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총수 기업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면서 단적인 예다.
가석방이 이뤄질 경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순위에 해당된다. 최 회장은 수감된 대기업 총수 가운데 최장기 복역 기록을 세우고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다음달 말이면 선고받은 징역형 4년의 절반을 채운다.
특히 SK그룹은 최 회장의 장기부재에 따라 실적 악화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미래 사업 발굴에도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최 회장의 가석방은 절실한 상황이다. 그룹 차원에서 4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계약직 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화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최 회장과 함께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구본엽 전 LIG엔설팅 고문 등도 형이 확정된 이후 형기의 3분의1을 채워 가석방 대상 요건을 갖추고 있다.
다만 해당 그룹들과 재계는 아직 무엇이 결정되지 않은 만큼 신중한 모습이다.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까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들은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기업인 가석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재계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가석방 요건이 충족됐다면 기업인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에 해당된다"면서 "총수들이 경영현장에서 활동하면 투자 결정이나 고용 창출에 대해 의사결정을 빠르게 가져갈 수 있어 정부의 경제활성화 방향에도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경우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인데다 건강상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나 있는 기간이 많아 당장 가석방이 이뤄지기는 어렵다. 또한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도 구속 상태지만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아 빠른 시간 내 가석방 절차를 밟기는 힘들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