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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팔공산 배뱅이 굿 시조(始祖)가 될 소리꾼 정병준

기사입력 : 2015년04월06일 09:00

최종수정 : 2015년03월30일 00:12

 

그 곳에 가면 그 곳만의 노래가 있다. 민요가 그렇다. 민요는 작사자나 작곡가가 없다. 나라가 생긴 이래 말로만 전수돼 지금까지 불리고 있는 노래다. 지방마다 지세가 다르고 물세가 다르다. 역사적인 배경과 풍습도 다르다. 자연히 사는 방식도 사람끼리의 소통 방법도 달랐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말은 사투리요 노래는 ‘토리’다. ‘토리’는 순수 우리말이다. 지방마다의 독특한 투의 노래를 뜻한다. 그래서 민요는 감칠맛이 난다.

이러한 민요의 토리는 네 개로 나누어진다. 평안도 황해도 지역소리를 〈서도 소리〉 또는 〈수심가 토리〉라고 한다. 고구려-고려로 이어지는 관서지방 사람들의 군인 같은 강한 기질의 맛이 나는 소리다. 서울 경기 충청 지역 소리는 〈경기 소리〉 또는 〈창부 토리〉라고 한다. 대궐의 단청처럼 단아한 기품이 넘치는 소리다. 강원도 경상도 지역 소리는 〈동부소리〉 또는 〈메나리 토리〉라고 한다. 꿈틀대며 용트림하는 태백산맥의 씩씩한 기상이 느껴지는 소리다. 전라도 지역 소리는 〈남도 소리〉 또는 〈육자배기 토리〉라고 한다. 전라도 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유장한 맛이 나는 소리다. 이렇게 민요는 각 지역마다의 사투리를 바탕으로 고유한 정서적 색깔을 띠고 있다.

경상도 출신 국악인은 전라도나 경기지역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 그런 경상도 사람이 북한지역 소리인 서도소리를 하고 있어 화제다. 정병준이 그 주인공. 정병준은 1959년 대구에서 출생했다. 가수가 꿈이었다. 중학교 때 반별 노래자랑에서 노들강변을 불러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가수가 되기 위해 무작정 도둑 열차를 타고 상경했다. 하지만 배가 고파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영남대학교를 알바로 졸업했다. 군대 제대 후 가수에 대한 꿈을 접고 국악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대구예술대학 한국음악과에 들어간 것이다.

대구예술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부인까지 속여 가며 이은관으로부터 서도소리를, 최창만으로부터는 경기소리를 배웠다. 그러던 중 김뻐국을 만났다. 김뻐국이 “어디가서 놀량이다 뭐다 하며 서도소리 하면 박수 못 받고 돈 못 번다. 유산가, 제비가 등 경기소리도 돈 안 된다. 나하고 팔도강산 유람가세 하면서 재담해야 박수 받고 돈 번다.”며 재담 배울 것을 권유해 뻐구기 소리, 함경도 사투리 어랑 타령, 목탁 소리, 남이 안하는 회심곡 등을 배웠다. 경기소리와 서도소리에다 재담까지 갖춘 만능 예능인이 된 것이다. 그러던 중 동국대학교 최종민 교수를 만나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한국음악 석사를 학위를 받았다. 말 그대로 실기와 이론을 겸비한 국악인으로 우뚝 선 것이다.

정병준은 서도소리 중에서도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배뱅이 굿을 이수했다. 배뱅이 굿은 ‘문벌 높은 집안의 귀한 무남독녀로 태어난 배뱅이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꿈에서 비둘기목을 비틀어 버렸다고 하여 이름을 배뱅이라고 지었다. 귀엽고 곱게 잘 자랐으나, 18세에 우연히 병을 얻어 죽었다. 배뱅이 부모가 딸의 혼령을 위로하는 넋풀이를 하는데 엉터리 박수무당이 교묘한 수단을 써서 거짓 넋풀이를 해주고 많은 재물을 얻어 가진다.’는 내용이다. 한 사람의 박수무당이 등장하여 각 과정에 등장하는 총19명의 배역을 소리와 재담으로 연출해 낸다. 굿의 미신적 요소를 풍자적으로 꾸며 흥미를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배뱅이 굿 보유자였던 故 이은관이 “관객들하고 호흡해야 대우 받는 국악인이 되네. 관객하고 호흡하는 데는 배뱅이 만한 것이 없네. 배뱅이 애기 우는 소리, 무당소리 등 경서도 소리 중에서는 배뱅이가 최고네. 배뱅이 굿에는 팔도소리가 다 있네.”하며 배뱅이 굿 배울 것을 권유하여 배우게 되었다. 요즘엔 배뱅이 굿을 1인 창극식으로 연출하기도 한다. 관객들에게 희노애락을 주는 연극 중 배뱅이 굿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은관은 정병준에게 엄한 스승으로 남아있다. 지난 2015. 3.12 故 이은관 선생 추모 1주기 공연이 있었다. 공연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에서 올라 온 그에게 이은관 선생님과의 추억을 물었다.

“아이고 말 마이소. 억쑤로 무서운 분입니다. 보신탕을 좋아하셨고 빵을 좋아 하셨습니다. 종로 3가 빵집에서 만나 이런 저런 말씀을 말이 들었습니다. 배뱅이 굿 이수자가 한 50여 명 됩니다. 이은관 선생님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여자 제자는 이수증을 장롱 속에 넣고 활동을 안 한다. 남자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이 중 너(정병준)도 해당 된다.’며 죽을 때까지 배뱅이 굿을 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저는 죽을 때까지 배뱅이 굿을 할 것입니다.”

정병준이 서울을 오가며 배뱅이 굿을 한 창 배울 때 경기소리 1인자 최창만에게서 경기소리도 배웠다. 속칭 양다리를 걸치고 소리를 배운 것이다. 어느 날 최창만 사무실에서 경기소리를 한창 배우는 데 이은관이 놀러왔다. 이은관이 ‘어 여기 내 제자가 있네.’하는 순간 분위기가 아주 어색해 졌다. 정병준이 “선생님 죽을죄를 지었습니다.”하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이은관이 “아닐세 이 사람아. 경기소리도 배우고 서도소리도 배우게. 그래야 밥 먹고 사네.”하며 웃음으로 받아 주었다.  

이은관은 배뱅이 굿을 할 때 마다 그 맛이 다르다. 배뱅이 음반을 낼 때마다 그 소리가 다른 것이다. 그게 국악의 맛일 지도 모른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그 흥과 한이 소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서양음악과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가 이 것이다.

인터뷰 도중 소리를 부탁했더니 최창만에게서 배운 창부타령이 흘러 나왔다. 연조가 있는 목소리였다. 깊게 살아있는 목소리가 뽑아져 나왔다. 조야(粗野거친)스러운 들판의 소리 같기도 했고, 술판의 소리 같기도 했다. 흥이 묻어나는 인생의 봄 소리인가 하면, 애절한 가을 단풍잎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정병준이 달고, 맺고, 푸는 장단 속을 소요유(逍遙遊)하다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 번 바뀌지 않아 이은관제 배뱅이가 팔공산제 배뱅이 굿으로 더늠 되어 대구 지방문화재로 태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와 헤어지는 한강대로에 봄볕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마치 그의 앞날에 화창한 봄날을 예고하듯.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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