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보다 정확하게…리스크 감수할 지원 필요
[뉴스핌=박예슬 기자] “우리나라 제약 산업의 외형이 왜 ‘고만고만’한 지 아세요? 기본적으로 제약업계는 제품을 하나 개발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뭐든 ‘빨리빨리’ 성과가 나야 인정해 주기 때문에 ‘갤럭시’처럼 매년 신제품이 나와야 알아주는데, 제약업계는 기본적으로 제품 하나 개발하는 데만 적어도 10년이 넘게 걸리니 밖에서 보기엔 성과가 없어 보이고 국민적 관심도 덜한 거죠.”
얼마 전에 만난 한 제약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 외에도 많은 업계인들이 비슷한 부분을 지적하곤 한다.
실제로 하나의 ‘신약’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노력과 시간, 시행착오의 결정체나 마찬가지다. 신약개발의 가장 첫 단계인 후보물질을 선정하는 데만 해도 성공확률이 극히 낮다. 이 때문에 이미 타사가 발굴한 후보물질을 도입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이려는 시도도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임상 1상부터 2상, 그리고 사실상 최종단계인 3상까지 거치면서 하나의 후보물질이 최종적으로 신약으로 시중에 등장할 수 있는 확률은 평균 0.1%에 불과하다. 타 산업에 비해 막대한 연구개발(R&D) 비용이 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시행착오도 줄이면서 비교적 단기간에 가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바로 해외 제약사들이 이미 개발한 제품을 도입해서 판매만 대행하거나, 글로벌 신약의 ‘제네릭(복제약)’을 제조하는 방법이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신약개발에 따른 보상이 보장되지 않는데, 제약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 제네릭으로 적당한 수준의 수익을 내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게 된다”며 “제네릭 내수에만 치중돼 있다 보니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7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형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던 국내 제약산업에 모처럼 ‘볕’이 들고 있다. 지난해 한미약품의 잇따른 신약 수출계약건 성사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바이오 7대강국 진입’을 내걸고 있는 정부 또한 한미약품의 사례를 자랑스레 언급하며 ‘꿈과 희망’을 말한다.
하지만 한미약품이 지난 15년여간 영업손실을 내면서도 R&D에 1조원 가까이를 투자했다는 사실 또한 주목해야 한다. 한해가 멀다하고 신제품을 쏟아내는 ‘타 산업’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선택했던 경쟁사들이 비해서도 한미약품은 시장에서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제약산업은 이제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의 타 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미래 먹거리’로 논의되고 있다. 삼성, SK 등 ‘몸집 큰’ 사업만을 도맡았던 굴지의 대기업들도 하나둘씩 제약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약산업만큼은 기존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거뒀던 타 산업들처럼 ‘빠른’ 결실만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게 업계인들의 공통적인 시각이다.
정부는 벌써 신약개발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효능이 우수한 신약에 한해서는 임상3상을 생략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도전’은 정답이 될 수 없다. 의약품은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3상 단계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개발되지 못하는 신약들도 여전히 많다.
느리지만 정확한 길을 가야 한다. 한국경제의 고성장 시기 무조건 빠른 성과만을 바라며 과정을 무시했던 결과는 부실공사로 인한 참사와 여러 비극을 낳았다. 제약사들이 두려움 없이 마음껏 ‘실패’하면서도, 재도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 진정한 ‘바이오 7대강국’을 만드는 길이다.
[뉴스핌 Newspim] 박예슬 기자 (ruthy@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