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해소만 최소 2조 필요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장애인에게 맞춤형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인 장애인등급제 폐지방안이 예산이라는 장벽에 막혀 반쪽자리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애초 방안대로 OECD 기준으로 장애인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선 복지플래너와 장애인 사각지대 해소 등 최소 현 예산보다 두 배 수준의 예산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정부가 이 같이 승인해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내년 7월부터 장애인 등급제를 중증과 경증으로 간소화하는 등 등급제 폐지를 단계적으로 시행한다. 기존 장애인 6등급제는 등급별 지원혜택이 정해져 있어, 각 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서비스가 불가하다는 지적에서다. 앞으로 '복지플래너'를 채용해 직접 장애인을 방문해 필요한 서비스를 등급에 상관없이 필요에 맞게 제공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 이를 통해 장애인 혜택을 받는 인원도 OECD 선진국 수준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지난 1일 장애인시설을 찾은 정진엽(왼쪽) 보건복지부 장관.<사진=보건복지부> |
예컨대 4등급 장애인 중에는 의학적 소견상으로는 해당 등급이 맞지만, 실제 생활 및 환경을 고려할 경우 3등급에 해당하는 서비스가 필요한 때가 많다. 그러나 현 등급체계에서는 정해진 등급 외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한다.
4등급 장애인을 둔 경기도의 한 부모는 "아들이 20대 후반인데, 걷지 못해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라면서 "그럼에도 의학적으로 4등급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재택 일자리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발 한 번만이라도 정부에서 직접 아이 상태 좀 살펴보고 검토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제 OECD 국가 대부분은 이런 문제점을 인지하고 등급제를 시행하지 않는다. 대신 복지플래너가 직접 장애인을 만나 생활을 지켜본 후 필요에 맞는 직장과 연금, 도우미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OECD 국가들은 인구수 대비 10%를 장애인으로 보고 있고, 그만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5% 수준으로 OECD 국가의 절반 수준이다. OECD와 비교하면 현 장애인 수 만큼이 장애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는 장기적으로 복지플래너 정책을 도입 및 활용해 이 같은 사각지대를 줄여 나갈 계획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현 예산 수준에서 크지 늘지 않으면 반쪽짜리 정책도 되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복지부에 장애인 예산으로 1조9000억원을 지원했다. 복지부의 추진 방향대로라면, 복지플래너 채용과 장애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 해소 등에만 최소 2조원이 추가로 필요해 보인다. 전국 250만명의 장애인을 고려할 때 복지플래너가 전국 3000여개 읍면동에 최소 1명 이상은 필요해 보이고, 또 현 장애인 수 만큼 신규 장애인이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장애인 복지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매년 15~20% 수준으로 예산이 증가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지원받기 어렵다는 장애인들의 불만이 들려오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처럼 시스템이 전면 개편되는 상황에서 현 수준의 증가율로는 맞춤형 장애인 복지제도를 시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예산 확보 보장없이 섣불리 추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예산 부분은 조정하면 된다"면서 "다만 앞으로 선진국 수준의 장애인 정책을 위해선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은 공감하고 예산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