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대출·출연으로 자본확충 재원 확보…정부·한은 "발권력 동원 아니다" 한 목소리
[뉴스핌=정경환 이윤애 허정인 기자] 일단 기획재정부가 이긴 셈이다. 정부가 구조조정 자금 마련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서 한국은행 발권력 동원에 성공한 것. 다만,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정치권이 강하게 반발, 향후 한은 발권력 동원과 관련된 논란이 뜨거워질 조짐이다.
정부는 8일 직접출자 1조원에 정부·한은 조성 펀드 11조원을 더한 총 12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및 국책은행 자본확충 등 보완방안'과 관련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기획재정부> |
여기서 문제는 10조원 한도의 한은 대출을 주된 재원으로 하는 펀드인데, 한은 대출이 곧 발권력 동원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지난 4·13 총선 당시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 처음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꺼낸 이후 끊임없이 논란이 돼온 문제로, 한은은 그동안 특정 기업의 구조조정을 위한 발권력 동원은 안 된다며 강하게 반대해왔다.
이와 관련, 김봉기 한은 금융기획팀장은 "금융 안정을 위해 나서는 것일 뿐, 기업 구조조정을 위해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며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국책은행 자본확충 건이 사실상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재원 마련 등에서 한은의 직접출자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이번 방안에서 신보의 지급보증을 통해 한은의 손실위험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는 앞서 2009년 20조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 조성 당시의 방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문제는 신보의 보증 재원을 한은이 부담한다는 것인데, 펀드에 대출하는 한은 재원 규모를 최대 10조원으로 볼 경우 신보 보증 재원은 그것의 5%, 즉 5000억원이 필요하다. 이 돈을 한은이 출연한다는 것인 바, 이는 곧 발권력 동원이다.
김봉기 팀장은 "신보 출연 주체는 여러가지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며 "2009년엔 한은이 출연한 사례에 비춰 폭 넓은 내용이 될텐데, 한은이 출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정부와 한은은 이번 방안에서 시장 불안이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경우 수은 출자를 포함해 금융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수단 강구한다고 한은의 수은 직접출자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발권력 동원은 안 된다며 버티던 한은이 끝내 손을 든 셈이다. 하지만, 정부 역시도 이번 자본확충 방안이 한은 발권력 동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이호승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이날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관련 브리핑에서 "발권력 동원이 아니다"라며 "발권력은 없는 돈을 새로 찍어낸다는 것인데, 이번 건은 어딘가 있는 돈을 옮겨 놓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다만, 그러면서도 이 국장은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날 정부의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이 나오자마자 중앙은행의 발권력 남용으로 보고, 즉각 반발하고 있다. 앞으로의 구조조정 추진 과정도 순탄치 않을 것임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날 민주정책연구원이 마련한 '위기의 한국경제와 구조조정 방안 연속토론회'에서 "한은의 발권력을 통한 자금 조달은 1970년대 개발시대에 나온 사례"라며 "당시 한은이 무조건 발권하고, 비자금을 싸게 은행에 지원해 부실기업을 메꿔 나가는 역할을 담당했는데 그런 악몽이 다시 살아나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우려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이윤애 허정인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