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지난여름 친일 행각을 일삼으며 조국과 민족을 배신했던 염석진(영화 ‘암살’)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로 돌아왔다. “몰랐으니까. 해방될지 몰랐으니까”라고 울부짖던 그는 이제 “단 한 명만 살아남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라고 결연하게 말한다.
배우 이정재(44)가 신작 ‘인천상륙잔전’으로 또 한 번 천만 배우 자리를 노린다. 27일 개봉한 이 영화는 1950년 9월15일,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에 숨겨진 이야기를 담았다. 극중 장학수를 연기한 이정재는 더글라스 맥아더의 지휘 아래 해군 첩보대원들과 인천에 상륙, 적군의 심장부에 들어가 첩보 활동을 펼친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너무 영화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 우리나라에 이런 첩보작전이 있었는지도 의문이었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영화적 요소인지 궁금했어요. 작가, 연출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모두 사실이라더라고요. 그래서 자료를 받아 보고 싶다고 했죠. 다큐멘터리 두세 개와 책 한 권을 받았는데 거기에 쭉 나와 있었어요. 사실 저도 전쟁 세대는 아니니까 어떤 지역에서 어떤 전투가 있었고 그 전투로 어떤 희생자가 있었는지 잘은 모르잖아요. 이걸 보고 많이 놀랐죠. 특히 첩보작전이라는 게 있었다는 게 되게 새로웠어요.”
이정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첩보작전은 실제 ‘인천상륙작전’의 큰 줄기가 됐다. 그리고 이는 이정재가 이 작품에 출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 장학수라는 캐릭터 자체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쟁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첩보영화로 읽힌다는 점에서 너무 신선했어요. 또 장학수가 북한군으로 활동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이 수행될 수 있도록 애쓰는 지점들이 좋았죠. 그런 부분에서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였어요. 배우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보여줄 수 있는 게 많은 인물이었죠. 물론 연기하면서는 특정 부분을 부각하기보다는 중심을 잡으려고 했어요. 장학수는 어쩔 수 없이 전체의 중간의 음을 내야 하는 사람이라 제가 너무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다가 하면 보는 사람이 불편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래서 최대한 중간 음을 고르게 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음과 저음을 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게 저희 의견이었죠.”
결국 이정재는 장학수를 연기하면서 전체적인 인물들과의 조화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맥아더를 연기한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과 붙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재는 리암 니슨의 현장 편집본을 모두 받아 그의 연기 톤과 깊이를 분석, 자신의 색을 비슷하게 맞춰나갔다. 장학수와 맥아더의 시퀀스가 끊임없이 교차 편집되는 특성상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 그리고 이 과정은 베테랑 배우 이정재를 또 한 번 성장시키는 기회가 됐다.
“(리암 니슨에게) 밀릴 수는 없으니까(웃음) 더 열심히 했죠. 근데 자극이 많이 됐어요. 연기를 떠나서 정말 열심히 하는 배우죠. 소품 하나하나 다 챙기고 가발도 만들어 왔어요. 또 캐릭터 감정을 놓지 않으려고 세팅된 자리 밖으로 나가지도 않죠. 하지만 리암 니슨과 한국 배우의 차이점을 묻는다면 그건 모르겠어요. 얼마 전 ‘역전의 날’ 홍보 차 중국 다섯 개 도시를 돌았어요. 그때 현지 기자들이 공통으로 물었던 게 중국 배우와 한국 배우와의 차이였죠. 웬만하면 만들어서라도 대답하려고 했는데(웃음) 정말 없더라고요. 나라만 다르지 연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거의 비슷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죠. 그냥 나라를 불문하고 얼마큼 더 열심히 하느냐, 천재성이 얼마나 있느냐의 차이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리암 니슨은 정말 훌륭한 배우고요.”
그의 말대로 배우의 차이가 얼마큼 더 열심히 하느냐, 아니냐에 있다면, 단언컨대 이정재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는 데뷔 후 꾸준히 관객을 만나며 ‘청춘스타’에서 흥행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충무로 대표 배우’로 성장했다. 다만 최근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이상하리만치 실화 기반 시대극이 많다는 것. ‘관상’(2013)을 시작으로 ‘암살’(2015),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8월 촬영 예정인 ‘대립군’(정윤철 감독의 신작으로 피신한 선조를 대신해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의 사연을 다뤘다)까지 모두 실제 역사가 바탕이 된 작품이다.
“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다른 사람들과 똑같죠. 다만 그런 캐릭터를 맡았을 때는 잘 해내기 위해서 시대 자료를 많이 찾아보긴 해요. 평소 시나리오 선택할 때는 그저 들어온 것 중 가장 재밌고 안해본 캐릭터를 선택하죠. 물론 더 많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서 힘썼던 분들을 이제라도 많이, 또 제대로 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어요. 그러나 그 마음이 전부죠. 또 실제로 봐도 ‘관상’과 ‘암살’ 사이에는 ‘빅매치’가 있었고, ‘암살’과 ‘인천상륙작전’ 사이에는 ‘역전의 날’(한중합작 영화로 액션 장르의 형사물)이 있었어요. 또 ‘대립군’ 앞에는 ‘신과 함께’가 있죠. 전 그냥 미니멀한 연기를 했으면 다음에는 조금 다른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은, 반대로 해보려는 성향이죠. 연기자로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이 항상 있으니까요.”
요즘 이정재의 또 다른 롤은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의 이사다. 알려져 있다시피 아티스트컴퍼니는 1973년생 동갑내기 절친 이정재와 정우성이 지난 5월 공동 설립한 연예기획사. 투자금을 절반씩 내고 설립한 이 회사에서 이정재와 정우성은 이사직과 대표직을 각각 맡았다. 그리고 첫 배우로 KBS 1TV 일일드라마 ‘우리집 꿀단지’에 출연 중인 신예 이시아를 영입했다.
“이시아 씨 같은 경우에는 제가 들어오기 전 일이에요. 레드브릭하우스(정우성의 전 소속사)였을 때 정우성 씨와 이미 구두로 이야기가 됐던 배우죠. 저는 이시아 씨의 영입에 관여한 부분은 없어요. 다만 한두 달 차이로 시기가 맞물린 거죠. 후배들 영입에 대한 저희 생각은 그래요. 아무래도 저희가 오래 일했으니까 경험치가 있잖아요. 그런 경험치 바탕으로 해서 좋은 결정 내리게끔 조언 정도 해주는 게 전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사실 조언이 필요한 후배들이 있는가 하면 아닌 후배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냥 조언이 필요한 후배들이나 신인들 위주로 천천히 할 생각이에요(웃음).”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