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어느 날, 30년 후의 내가 눈앞에 나타났다. 다짜고짜 미래에서 온 자신이라고 주장하던 남자는 또 다짜고짜 지금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사랑하는 연인이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밑도 끝도 없이 연인을 살리는 방법은 헤어지는 것뿐이란다. 믿지 못하는 내게 여러 증거를 내밀던 그는 급기야 혼자만 알고 있던 아픈 상처를 건드린다.
14일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베일을 벗었다. 기욤 뮈소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 10개를 얻은 수현이 30년 전의 자신과 만나 평생을 후회하던 한 사건을 바꾸는 이야기다. 극중 변요한(30)은 미래의 자신을 만난 남자, 과거 수현을 연기했다.
“처음에는 원작이 있다는 부담감이 컸죠. 게다가 원작과 배경이 다르잖아요. 소설은 미국이 배경이고 자유분방한 느낌인데 과연 이걸 우리나라 정서로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죠. 근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감독님께서 정말 잘 녹이셨더라고요. 영화를 보고 나서는 더 그랬죠. 잘 표현됐더라고요. 내가 확신을 갖고 감독님을 믿었던 게 맞았구나 싶었어요.”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변요한과 김윤석의 2인1역 연기다. 변요한은 김윤석과 같으면서 또 다른 하나의 수현을 그려냈다. 연륜의 묵직함이 묻어난 김윤석의 얼굴과 젊음의 패기가 느껴지는 변요한의 얼굴은 이들의 안정적인 연기 속에 조화롭게 겹쳐졌다. 물론 여기에는 관객이 이질감이 아닌 호기심을 느낄 수 있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변요한의 노력이 있었다.
“2인 1역이라 비슷한 부분을 찾아야 했어요. 손짓, 입 모양, 걷는 것, 자세 이런 디테일한 것들을 살폈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본질적인 마음이라 고민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닮아졌고 모든 이유가 찾아졌죠. 다행인 건 주위에서 연극을 해서인지 연기 스타일이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또 제가 촬영할 때 고민이 많은데 선배도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선배의 뒷모습을 보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좋은 가장이자 좋은 배우구나,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저렇게 치열하게 고민하시는구나 싶었죠.”
변요한과 김윤석이 한 사람을 연기했지만, 사실 과거의 수현과 현재의 수현이 끌고 가는 이야기의 축은 조금 다르다. 현재의 수현에게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딸 수아(박혜수)라면, 과거의 수현이 꼭 지키고 싶은 이는 연아(채서진)다. 즉, 현재 수현의 주 감정선이 부성애라면, 과거 수현 변요한은 사랑이다.
“원작을 보면 엘리엇(수현)이 일리(연아)를 엄청 사랑해요. 그래서 수현이 연아를 얼마큼 사랑할 수 있을까 표현하려 했죠. 시작점은 수현에게 연아가 어떤 존재인가였어요. 6~7년 동안 서로를 쓰다듬고 아껴주면서 우린 서로를 어떻게 지켜준 걸까 그런 생각들을 했죠. 다행히 (채)서진 씨를 봤을 때 그런 부분이 많이 느껴져서 연기할 때 편했어요. 도움을 많이 받았죠. 또 서진 씨는 작게 표현하는 게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자신감도 있고 섬세하고. 제가 없는 부분을 많이 채울 수 있었죠.”
수현의 첫사랑이자 끝 사랑, 연아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변요한의 첫사랑 이야기로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난생처음 사랑에 빠졌다는 그는 “너무 어렸고 너무 서툴렀다”고 돌아봤다.
“사실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나요. 흐릿하죠.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같이 걸어간 것, 학원 앞으로 가서 그 친구를 데려다준 기억 정도죠. (여자 친구로)만날 때만 제가 외향적인데(웃음) 그땐 수줍음이 많아서 대화를 많이 하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 잘되진 않았어요.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잖아요. 아무래도 서투니까 이뤄지기 힘든 듯해요. 언젠가 방송에서 첫사랑이 가슴 아픈 기억이라고 말한 것도 그 서툰 모습이 스스로에게 그렇기 때문이죠.”
배우에게 어떤 작품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변요한에게 더 특별한 작품이다. 그간 독립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이 영화로 처음 상업영화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메이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죠. 근데 따지고 보면 그것 또한 연기하고 싶다는 갈증의 연속이더라고요. 상업 영화, 독립 영화를 구분 짓는 게 중요한 건 아닌 거죠. 똑같은 연기 고민이니까요. 진짜 중요한 건 무엇 때문에 연기하는지 명확히 하는 거죠. 물론 학창 시절 친구들, 군대 친구들과 종종 연락하면 ‘성공했네’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하지만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의 성공 기준은 자기가 만든 거죠. 제겐 그 기준이 이름을 알리는 게 아니고요. 한 작품 할 때마다 하루살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게 무슨 작품이든 성장 기회가 되고 좋은 기록으로 남죠. 제가 성공한 건 먼 훗날 죽을 때 내 자식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변요한이 개의치 않는 건 또 있다. 바로 흥행이다. 주연 배우로서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미는 당연히 아니다. 연기를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본질이 단순히 숫자는 아니라는 뜻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웃음)흥행에 대한 부담이나 집착은 1%도 없어요. 독립영화를 하면서 많이 넘어 져봤어요. 기분이 좋았다가 1초 만에 안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죠. 그래서 일희일비하면 안된다는 게 신조에요. 그저 매 순간 좋아하는 연기를 한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죠. 하다 보면 욕도 먹고 칭찬도 듣고 잊히기도 하고 또 부활하기도 할 거예요. 자연스러운 거죠. 다만 선배님들을 보면서 느낀 건 좋은 메시지를 주는 배우가 되자, 작품을 위해서는 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거고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전해지는 영화, 해가 지날수록,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작품을 하고 싶어요.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영화의 중심 스토리인 ‘30년 후의 나를 만난다면?’이란 질문을 던졌다. “찾아오는 순간 ‘요한아, 가라’고 할 것”이라며 그가 웃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늘 재밌었어요. 실패했던 순간도, 아팠던 시간도 재밌었죠. 외로움도 좋았고요. 모든 게 양분됐고 그렇게 만들어진 제 모습이 감사해요. 그래서 앞으로 인생도 무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대신 언제나 꿈은 가지면서 치열하게 작업해야겠죠. 노력하는 만큼 빛난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한결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거고요. ‘미생’ 끝나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다른 게 변하지 않으려면 네가 변하지 않고 한결같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항상 겸손하라고 그래야 모든 건 유지된다고요. 지금도 그 말을 언제나 되뇌고 있어요. 그저 지금도 이 순간 연기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이형석 기자(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