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전환율 상한선, 기준금리+3.5%p
보증금 증액 상한선 5%
신규나 재계약은 해당 안돼...실효성 논란
[뉴스핌=김범준 기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원룸에 거주했던 직장인 임모(30) 씨는 아직 계약만료 전인데도 최근 쫓기듯 이사했다. 집주인이 어느날 갑자기 "물가 상승으로 보증금 상승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보증금 상승분 2000만원에 해당하는 (월세 명목) 관리비 20만원을 달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전셋값 상승으로 전세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며 월세가 급등한 가운데 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인근에서 대학생들이 월세 및 하숙 전단을 살펴보고 있다. / 이형석 기자 leehs@ |
대출로 환산하면 연이자 12%. 요즘 은행의 정기예금 이자가 2%를 밑도는 것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높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전월세 전환율 4.75% 역시 훌쩍 넘기는 '위법' 사례다.
임씨는 "차라리 보증금을 올려줄테니 더 살게 해달라"며 사정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집주인 입장에서)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되니 그럴 수 없다. 싫으면 나가라"였다. 임씨는 너무 황당했지만 다툴 여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집을 알아봤고, 모아둔 돈을 보태 전세 1억짜리 원룸으로 이사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정모(여·31) 씨도 최근 세입자의 서러움을 겪었다. 상가임대차 계약만기 5년이 다가오자 건물주가 기존 2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월세를 두배나 올리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너무 지나친 조건이었지만 매장 인테리어 투자 비용과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갈 수 없어 결국 하소연과 설득 끝에 100만원 올린 월세 300만원에 재계약을 맺었다.
이 역시 지나친 상승폭이 었지만 정씨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며 "5년마다 시달리느니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내 소유의 상가를 하나 마련해야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실효성 없던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과 '차임(보증금) 증액 상한선'
임대차(賃貸借)에 관해 민법(民法)에 우선한 특별법인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 각각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과 '차임 증액 상한선' 등이 '강행규정'으로 명시돼 있는데도 이같은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강행규정이란 당사자의 의사(意思) 여하에 불구하고 선량한 풍속과 공공질서를 위해 강제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을 말한다. 이를 위반한 임대차 약정과 임차인에게 불리한 것은 무효다.
전·월세 전환율은 주택의 미래가치, 건물 감가상각 속도, 세입자의 임대료 체불 가능성, 공실 가능성 등을 고려해 산출한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 '연 12%' 혹은 '기준금리×4.5배' 중 낮은 비율을 곱한 범위에서 월차임 전환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2016년 6월 기준) 기준금리 1.25%를 적용한 5.63%가 법정 상한선이다. 한편 '차임(보증금) 증액 상한선'은 9%다.
역시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전·월세 전환율'은 '기준금리+3.5%p'다. 현재 기준금리 1.25%를 적용하면, 법으로 정한 상한선은 4.75%다. 보증금 1억원을 월세로 전환한다면 연간 475만원, 월 39만5833원을 넘으면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편 '차임(보증금) 증액 상한선'은 5%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광역지자체 17곳 중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 4.75%를 지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서울·세종만 5%대였고, 나머지는 대부분 7%를 넘어섰다.
이렇듯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과 '차임(보증금) 증액 상한선'이 잘 지켜지지 않은 이유는 '계약 기간 중'에 한정됨에 따라 신규 계약이나 재계약은 해당 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 중 보증금을 조정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보증금 상승과 전·월세 전환율 결정은 사실상 집주인과 건물주의 재량인 셈이다. 따라서 "싫으면 나가라"는 식의 횡포가 만연한 것이 현실이다.
◆4년간 서울 전셋값 49% 상승...재계약 위해 월평균 181만원 빚 내야
통계청과 KB국민은행 부동산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30세대 가구의 평균 가처분 소득은 월 360만원(2013년4월)에서 370만원(2016.11월)으로 2.7%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인 2030세대가 주로 거주할 수 있는 1분위(하위20%) 아파트 평균 전세가는 6800만원(2013년4월)에서 8300만원(2016년11월)으로 22% 상승했다. 수도권은 44%(3900만원), 서울은 49%(6400만원)로 더욱 많이 올랐다.
시계열 통계 '5분위 평균전세 아파트가격과 5분위 배율' <자료=KB국민은행 부동산 제공> |
한국감정원이 조사한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 인상액'은 2억5389만원(2013년2월)에서 3억7906만원(2016년11월)으로 1억2517만원 상승했다. 상승률은 역시 49%에 이른다.
같은 기간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계흑자액'은 월평균 97만원이었다. 가계흑자액은 가계소득에서 세금·사회보험·이자비용 등 비소비성 지출과 교육비·교통비·식비 등 소비지출을 뺀 금액을 말한다.
이 '전세가격 인상액(한국감정원)'과 '가계흑자액(통계청)'을 비교하면, 서울에 거주하는 무주택 서민들은 폭등하는 전셋값을 감당하기 위해 월평균 181만원의 빚을 내야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방식으로 수도권은 월평균 99만원의 가계부채로 계산된다.
주택 유형별 전·월세 전환율을 살펴보면, 아파트는 4.8%로 양호했지만 연립·다세대(6.8%)와 단독주택(8.3%)은 상한선을 크게 웃돌았다. 일반적으로 연립·다세대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 규모가 작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소득층일수록 월세 부담이 더 커진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