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은 기자] 실제로 만난 전역산은 작품 속 묵묵하고 다소 밋밋한(?)유정과는 정반대다. 유쾌함으로 무장했다. 처음 연극에 도전했지만,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제대로 소화했다.
전역산이 연극 ‘남자충동’에서 베이시스트이자 주인공 장정의 동생인 유정을 연기했다. 이 작품은 가부장 지향의 남자들이 ‘강함’이라는 판타지를 실현하고, 그로 인해 드러나는 폭력성향으로 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렇게 무난한 역할은 처음 해봤어요. 항상 눈에 띄고 주인공만큼 도드라지는 역할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더 힘들었어요. 매 작품에서 웃기는 역할을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얌전하고 조용하다보니 반응도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멘붕이 오기도 했어요. 하하.”
그가 말한 것처럼 ‘젊음의 행진’ ‘인 더 하이츠’ ‘알타보이즈’ ‘난쟁이들’에서 매번 코믹한 요소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남자충동’에서 유정은 얌전하고 소심한 캐릭터 그 자체이다.
“웃기고 싶었던 욕심은 컸죠. 하지만 이번에는 재미있는 걸 안하고 싶었어요. 진지한 역할을 오랜만에 해서 어려웠어요. 그래도 연극을 처음 해 보는데, 조광화 선생님 작품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의 데뷔 20주년 기념 작품에 올랐으니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거죠.”
지금까지 한 작품에서 전역산은 모두 여장을 한 남자가 아닌, 정말 ‘여자’를 연기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남자를 연기하지만, 여장남자 단단이를 사랑하는 동성애를 표현했다. 첫 도전에 험난한 길이 열렸던 셈이다.
“동성애 연기가 처음이에요. 무대 위에서 정말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스킨십이나 뽀뽀 같은 건 정말 싫어요. 하하. 단단이를 맡은 문장원이랑은 친분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싫은 걸 수도 있고요. 그래도 단단이라는 역할을 안 하게 돼서 그저 감사한 마음이에요(웃음).”
그에게 ‘남자충동’은 유난히 처음이 많다. 연극 데뷔에, 이렇게 조용한 인물도 처음이라고 할 만큼 오랜만에 맡았다. 특별한 계산이 있진 않아서인지 전역산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유정이 탄생했다.
“외로움을 찾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이것저것 계산하려 들지 않았죠. 유정이라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은 많았지만 분석을 하진 않았어요. 작품 속에서 어머니는 달래만 찾고, 장정이는 달래와 집안만 생각해요. 그래서 도달한 게 유정이는 외로운 아이라는 거였고요. 그 감정 그대로 솔직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죠.”
이 작품에서 주인공 장정과 다른 배우들을 묵묵히 서포트해준다. 다른 역할에 비해 유정은 전역산이 원캐스트로 올랐다. 그러다보니 배우들과 합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았다.
“제가 외동이라서 그런지 정말 형이 생긴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래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죠. 저의 연기적인 욕심을 챙기기보다, 동생으로서 묵묵히 옆을 지켜주고 싶었어요. 형들한테 맞춰준다는 느낌이 아닌, 홀로 고민하더라도 그들이 얘기하는 걸 다 듣는 동생이 되고 싶었죠.”
많은 부분을 노력 했고, 연습했지만 어째서인지 전역산은 자신의 연기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만족스럽지 못한 연기에요. 초반에는 연기생활 헛했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웃음). 스스로 ‘난 연기에 타고난 애가 아니야’라는 자괴감도 들었고요. 업그레이드가 된 저를, 그리고 무난한 연기를 잘 소화한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크네요. 수우미양가로 치면 지금 연기는 ‘미’에요. 다음에는 우, 그리고 한 단계씩 올라가 수까지 찍어야죠.”
전역산에게 ‘남자충동’은 힘듦의 연속이었다. 그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인지 묻자 “군대 같은 작품”이라는 답변과 함께 호탕한 웃음이 돌아왔다.
“남자들이 군대는 ‘가야해서 갔는데 또 가고 싶진 않아’라고 표현하잖아요. 이 작품이 저한테는 군대와도 같아요. 하하. 그 정도로 열심히 훈련에 참여했어요. 그래도 또 다시 조광화 선생님의 작품이 들어오면 할 거예요(웃음). 남자가 군대에 다녀오면 진정한 남자가 되듯, 저 역시 이제야 배우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아요. 이번 작품으로 다시 꿈이 생겼어요. 배우다운 배우가 되고 싶은 거예요. 더 노력해서 제 꿈, 다시 이룰게요.”
[뉴스핌 Newspim] 이지은 기자 (alice09@newspim.com)·사진=프로스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