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식명령 ‘피고인 편의·신속 판결 취지의
벌금 등 재산형 선고하는 간이 형사 재판’
2008년~올 6월 정식 재판 청구율 10.2%
대법 형사사건 27% 약식명령 불복 재판
약식명령보다 중형선고 불가…악용우려
[뉴스핌=김범준 기자] 영화 '부당거래'(류승완 감독)를 보면, 주 검사(류승범 분)가 자신과 친분이 있는 건설사 김 회장(조영진 분)이 탈세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자 "내일 정도에 약식명령 날거요. 벌금이나 준비해두쇼"라고 한다.
영화 '부당거래(2010)' 스틸컷. 검사 역을 맡았던 배우 류승범씨. |
약식명령이란 검사의 청구가 있는 때 정식공판절차 없이 서면심리만으로 피고인에게 벌금·과료·몰수 등 재산형를 과하는 간이 형사재판이다.
주로 범죄 혐의가 크지 않고 간단한 사건에 대해 신속한 판결을 내리면서 피고인의 편의는 물론 사법부의 업무 효율성도 도모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도입 취지가 무색하게 약식명령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약식명령 사건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비율은 지난 2008년 7.5%(8만6485건)에서 2012년 12.4%까지 꾸준히 증가한 후 현재까지 1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약식명령에 불복한 정식재판 청구가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도 허다했다.
지난 2008년부터 올해 6월까지 최근 10여년간 대법원에서 처리한 형사 사건 19만6635건 중 약식명령 불복 재판은 5만3620건(27.3%)에 달했다. 이중 5만1882건(96.9%)은 기각됐다.
약식명령사건 및 상고심 현황 대법원 자료. [금태섭 의원실 제공] |
재판의 효율성을 위해 도입된 약식명령제도가 오히려 재판의 전심(前審) 절차 격이 돼버린 것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꼴'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불필요한 소(訴)가 남발되는 원인 중 하나로 '불이익변경금지의 원칙'을 꼽는다. 이 원칙에 따라 법원은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서는 약식명령(원심판결)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다.
따라서 많은 피고인들이 '밑져야 본전' 또는 '아님 말고' 식의 '가벼운' 마음으로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또는 이를 악용해 '절차 지연' 등 악의적인 목적을 추구하기도 한다.
벌금형이 대개는 몇백만원 수준인데,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비용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게 되므로 대개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구한다.
결국 무의미한 재판에 법원 및 국선변호인 인력과 세금이 낭비되면서,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이 피해를 보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서울 서초동의 한 국선변호인은 "형량의 상한이 정해져 있고 변호사 비용 역시 본인 부담이 아니다보니, 유죄 판결이 거의 확실한데도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키는 사람들이 꽤 있다"며 "어떤 사람은 '내 세금으로 국선변호 비용 받지 않느냐'면서 윽박지르기까지 한다"고 전했다.
이어 "민사재판과 달리, 형사재판의 경우 국가 대(對) 개인의 대결이라는 불균형 때문에 피고인이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할 경우 권리보장을 위해 웬만하면 경제적 형편을 따지지 않고 (선정)해준다"면서 "형소법에 규정된 국선변호인 청구 조건인 '빈곤 그 밖의 사유'에 대해 구체적·실질적으로 심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