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법인으로 재무제표 심사...신용도 '하락'
특허·상표권 모두 변경...변리사 비용 ↑
기존 법인 청산에 해외부동산가치 평가 등...법무·회계·세무비용 ↑
[뉴스핌=김지완 기자] 스팩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기업들이 기존 법인 청산으로 사업자번호가 변경되는 등 많은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팩(SPAC, 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상장은 비상장기업이 인수·합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서류상 회사인 '스팩'과 합병을 통해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스팩상장은 일반투자자 청약 절차 등의 생략으로 2~3년씩 소요되는 상장절차가 수개월로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장점으로 올해 스팩상장을 이용해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은 15개사에 이른다. 작년(12개사), 재작년(13개사) 등 스팩상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비상장 우량기업들의 새로운 상장루트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스팩상장 제도는 2009년 도입돼 지금까지 51개 기업이 스팩상장을 통해 코스닥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명목상의 페이퍼 컴퍼니에 불과한 스팩에 실질 사업주체인 비상장법인이 피합병 되면서 기존 법인은 완전히 청산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사업자등록번호는 사라지고, 스펙의 사업자등록번호로 대체된다.
기존 법인이 사라지면서 이들은 은행 차입금을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스팩상장으로 올 하반기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의 CFO는 "은행 차입금을 스팩법인으로 승계해야하는데,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한 스팩법인으로 재무제표 평가를 받다보니 신용도가 안 나온다"면서 "기존보다 신용도가 떨어지며 자연스레 차입금을 일부 상환해야 하는 등 대출 승계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해외투자법인을 스팩법인에 승계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그는 "국내법상 해외투자가 매우 엄격하다. 해외자회사를 통해 해외에 투자해 놓은 뒤 기존 모회사를 청산하면 외화반출로 의심을 받아 처벌받는다"면서 "그런데 스팩상장으로 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런 문제들로 해외법인들을 스팩법인으로 양수도하는 과정에서 은행들이 해당업무를 거부해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직상장(IPO)할 경우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도 스팩상장 과정에서 발생한다.
코스닥상장사 IR팀 관계자는 "기존 법인이 청산되다 보니 법인세신고, 폐업신고 등 회계·세무 비용이 상당히 많이 소요된다. 특히 해외투자 자산이 있는 경우 해외 자산평가까지 모두 이뤄져야 한다"면서 "아울러 스팩법인에서 기존법인 주식을 취등록하는데 취등록세만 6000만원~7000만원 지출했다. 이 역시 적격합병 요건에 해당돼 80% 감면받은 금액이다. 해외부동산이 많았다면 비용 지출은 훨씬 더 늘어났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특허·상표권 등을 신규 사업자번호로 변경하는데 변리사 비용이 추가로 지출된다"고 덧붙였다.
스팩상장에 따른 불편함도 크다. 스팩상장으로 코스닥에 입성한 기업 대표는 "사업자번호 변경으로 법인차량의 자동차보험 수익자 변경을 해야하고, 법인카드·법인통장 등도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면서 "또 우리처럼 대리점이 있으면 수십개 대리점의 사업자번호를 모두 바꿔야 한다. 매입처·매출처 등 모든 거래처에 합병에 공문발송과 함께 세금계산서가 바뀌는 점도 공지해야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기존 법인 청산으로 인해 거래처로부터 신뢰도 하락이 가장 큰 골칫거리다. 스팩 상장을 앞두고 있는 IR팀장은 "최근 거래처 관계자로부터 '진짜 당신네 회사가 다른 회사에 필리냐', '당신네 회사가 망한거냐' 등의 질문들이 온다"면서 "스팩합병 과정에서 정작 사라져야 할 페이퍼컴퍼니가 살아남고, 상장주체인 기존 법인이 청산되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팩합병과 관련된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아직 관련 세부법안은 좀 더 다듬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팩상장의 불편함을 지적하자 관계기관은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을 내놨다. 한국거래소 상장제도팀 관계자는 "스팩상장 제도 자체가 비상장 법인이 피합병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며 "우리는 자본시장법내 '기업인수목적회사법'에 정의된 대로 실행하는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뉴스핌 Newspim] 김지완 기자 (swiss2pa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