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세혁 기자]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돌아왔다. 이름만으로 팬들을 셀레게 하는 그가 들고 온 작품은 무척이나 낯설다. 가족의 다양한 이미지로 우리 삶을 투영해온 감독이, 이번엔 묵직한 살인사건을 풀어나간다. 여러모로 14일 개봉하는 신작 '세 번째 살인'은 지금껏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린 적 없던 생경한 영화다.
어찌 보면 서스펜스에 가까운 '세 번째 살인'은 승리만 추구하는 냉철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와 공장 사장을 살해한 용의자 미스미(야쿠쇼 코지), 그리고 피해자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의 이야기다. 미스미의 변호를 맡은 시게모리는 착실하게 증거수집에 나서지만 매번 달라지는 변호인의 말에 골치가 아프다. 그 와중에 미스미와 주변인물, 특히 사키에의 심리를 파고들수록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결정적으로 미스미가 혐의를 부인하면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좋은 의미로 관객에게 멋진 배신감을 주고 싶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런 바람은 멋지게 이뤄질 듯하다. 왜냐면 영화의 막이 내려간 뒤 객석에선 수많은 물음표가 떠올랐으니까. 시게모리의 시점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세 번째 살인'은 결국 누가 공장 사장을 죽였는지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시게모리와 함께 나름 추리를 거듭하던 객석은 감독이 내린 결말에 묘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연기력으로는 비교를 불허하는 야쿠쇼 코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관록과 실력을 과시한다. 과연 일본이 자랑하는 국민배우다. 미스미 캐릭터에 멋지게 다가간 그의 존재감과 매력은 시게모리를 혼란에 빠뜨릴 때 극대화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쿠야마 마사하루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히로인 히로세 스즈의 연기 앙상블도 대단하다.
무거운 이야기, 적막에 갇힌 한겨울의 홋카이도 등 영화가 품은 어두운 요소들은 감독의 새로운 도전에 힘을 실어준다. 물론 이런 장치들 탓에 관객 입장에선 따분함을 느끼겠지만, 전체적으로 감지되는 거장의 열정이나 일종의 개척정신은 분명 감탄할 부분이다. 특유의 따뜻한 감성이 결여됐다고 서운해할 것도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니까.
[뉴스핌 Newspim] 김세혁 기자 (starzooboo@newspim.com)·사진=(주)티캐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