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에도 역대 최고 뇌물 금액 적발
형사처벌 받아도 끄떡없는 의사 면허…사실상 면죄부
[서울=뉴스핌] 김유림 기자 = 정부가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근절하기 위해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만, 규제와 처벌이 제약사에 치중되고 있다. 이에 검은돈을 건네받은 의료인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리베이트 쌍벌제’와 ‘리베이트 투아웃제’ 도입 이후에도 굵직한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 리베이트 쌍벌제 코웃음… 검은 거래 기승
2010년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쌍벌제는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뇌물을 받은 의료인도 함께 처벌하는 처벌 제도다. 뒷돈을 받은 의료인은 2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1년 이내 자격정지 처벌이 가능하다.
이어 2014년 제약회사가 특정 약을 채택한 병원 간부, 의사 등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2회 적발될 경우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퇴출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까지 시행됐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정부의 칼날에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는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상 역대 최고 금액의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이 적발되면서 ‘유명무실한 규제’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다.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에 따르면 파마킹 김모 대표는 2010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영업사원을 통해 전국 590곳에 이르는 병원 의사에게 56억원 상당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2016년 기소됐다. 지난해 1심 재판이 열렸고, 징역 1년8개월을 선고받았다.
반면 파마킹 의약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의료인 중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3명이다. 28일 대법원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 3명에게 벌금 400만~1500만원을 선고, 추징금 850만~3500만원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나머지는 모두 벌금 약식 명령을 받았다.
이 같은 판결을 두고 전문가들은 의료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약품 리베이트 사건에서 의료인은 하나같이 “원하지 않았는데, 제약사 영업직원이 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의약품 처방의 권한을 가진 의사는 ‘슈퍼갑’의 위치일 수밖에 없다.
◆ 근본 원인? “의사 슈퍼갑, 영업사원 을”
국내 제약사들은 전문의약품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신약보다는 제네릭(복제약) 위주로 영업을 하는데, 같은 효능을 내는 수백개의 약 중 어떤 회사의 제품을 처방하는 지는 의사에게 달려있다.
이 때문에 제약기업 측은 “자사 제품을 처방해 달라”고 의사 측에 로비를 벌여왔고, 이들의 검은 거래는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됐다. 리베이트를 받는 의료인과 매출 증대를 도모하는 영업사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의사에게 밑 보이면 처방전 매출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며 “이런 일이 여러 번 생기면 그 병원에서 약은 못 판다고 보면 된다”고 토로했다.
이런데도 정부의 처벌과 규제는 제약기업과 일개 영업사원에 치우쳐 있고, 의사의 면허취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 의사면허 취소 사례 소수… 취소 되더라도 재교부 가능 '철밥통'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석진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의약품 리베이트 적발 현황’을 보면 2012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누적 적발 건수 2276건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 처벌인 ’면허취소’는 27건으로 1.1%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두 1년 이하의 자격정지였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면허 취소 요건은 △허위 진단서 작성 △업무상 비밀 누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 관리법) 위반 △진료비 부당 청구 △면허증 대여 △제약·의료기기 회사 리베이트 등으로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해 금고 이상 형을 받은 경우이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획득한 의사 면허는 ‘철밥통’이다. 취소되더라도 1~3년 정도 시간이 흐르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면허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다. 복지부에 반성문 등 6가지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를 거치면 다시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다.
실제로 복지부에 지난 2007년부터 10년간 의사 면허 재교부를 신청한 94건 모두 승인됐고, 지난해 단 한 건의 재교부 신청만 보류됐다.
따라서 제약업계의 고질병인 리베이트 관행의 근본적인 원인이 ‘의사=갑’이라는 현실에 맞는 처벌 규정이 시급해 보인다.
일본은 벌금형 이상 형사 처분을 받은 경우 형의 경중에 따라 의사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된다. 독일은 비윤리적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는 취소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돼있으며, 일단 의사가 피고인이 되면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 미국은 형사 처벌을 받은 의사에게 무기한 면허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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