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금성' 스파이 박석영 열연…차기작은 SF영화 '귀환'
[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정보사 소령 출신의 안기부 요원. 그는 첫 임무로 북 고위층 내부로 잠입해 북핵의 실체를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암호명은 흑금성. 정체를 아는 이는 단 세 명뿐이다. 두려움도 잠시, 그는 오로지 나라를 위해 외롭고 고독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배우 황정민(48)이 이번엔 스파이가 돼 돌아왔다. 8일 개봉하는 영화 ‘공작’은 1990년대 중반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으로 북핵의 실체를 파헤치던 안기부 스파이가 남북 고위층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감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실제 암호명 ‘흑금성’으로 활동했던 안기부 스파이 출신 박채서 씨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황정민은 “이런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를 통해 처음 들었어요. 1990년대를 내가 살아왔는데 이런 걸 몰랐다는 거에 너무 놀랐죠. 처음 든 생각이 ‘헐, 대박’이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도 빨리 알려주자 싶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이후로는 박석영이란 인물의 신념이 궁금했죠. 어떤 신념이면 이렇게 가족까지 뒤로하고 자신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그럴 수 있을까 싶었어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
박석영에 대한 의문은 박채서 씨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촬영 전에는 실존 인물을 만나지 않는 그지만(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다), 이번에는 그 철칙을 깨버렸다. 박채서 씨를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봐야만 할 것 같았다.
“그냥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김정은을 만났지? 나라면 심장이 터졌을 텐데’라는 생각도 계속했죠. 어떤 얼굴, 말투보다 느낌이 궁금했어요. 때마침 촬영 전에 출소하셔서 식사를 했죠. 어떤 대화를 하진 않고 계속 보기만 했어요. 아무래도 배우를 오래 해서 눈을 보면 성향이 어느 정도 읽히거든요. 근데 읽을 수가 없는 거예요. ‘이 상황은 뭐지?’ 싶었어요. 벽 같은 느낌이 있었죠. 말도 되게 빠르셨고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실제 황정민은 박석영을 연기하면서 박채서 씨의 외모나 행동은 전혀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박석영 자체로 받아들이고 그려냈다. 서울말과 경상도 사투리를 번갈아 쓰는 것도 본래 신분과 위장 신분을 구분하기 위해 추가한 설정이다.
“외모적인 건 생각도 안했어요. 일대기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그냥 연기할 때는 1인2역이라는 생각을 했죠. 나름대로 최선이었어요. 만일 이게 실화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것을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실화가 바탕이라 한계가 있었어요. 그러다 역할에 따라 말투를 바꿨죠. 처음에는 오버가 아닐까 하다가 일단 그렇게 시작해보자 한 거예요.”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야심 차게 시작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는 무너졌다. 데뷔 24년 차. 그간 수없이 많은 무대에 올랐고 카메라 앞에 섰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황정민은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정말 바닥을 쳤다”고 털어놨다.
“이런 압박은 처음이었죠. ‘구강 액션’이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매 신을 액션처럼? 말을 하는데 어떻게?’ 싶었죠. 늘 퀘스천 마크였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어떻게 보면 안일하게 생각한 거죠. ‘하면 되겠지’ 했다가 큰코다친 거예요(웃음). (이)성민이 형한테 ‘배우 그만하자’고 그랬을 정도였죠.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학생 때 작품 하듯 해나갔어요. 하나하나 이야기하면서 긴장감을 쌓아갔죠.”
순탄치 않았던 게 연기뿐만은 아니다. 알려졌다시피 ‘공작’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에 기획되고 촬영에 들어갔다. 게다가 워낙에 제작비가 크다 보니 투자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황정민은 투자 확정 전에 출연을 결정했다. 불안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배우로서 사명감은 거창하고(웃음) 그냥 광대 기질이죠.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냥 이 이야기를 너무 알려주고 싶었어요. 워낙에 큰 사건이니까. 그리고 나서는 ‘뭐 죽기밖에 더하겠어? 일단 부딪쳐보자’ 싶었죠. 투자가 안된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도 그냥 자신감이 있었어요. ‘내가 하는데? 황정민이 하는데? 투자가 안돼?’라는(웃음). 솔직히 안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자신감으로 힘을 낸 거죠.”
[사진=CJ엔터테인먼트] |
차기작은 영화 ‘귀환’이다. ‘국제시장’(2014)을 함께한 윤제균 감독과 JK필름이 함께하는 신작. 불의의 사고로 최초의 우주정거장 살터-03에 홀로 남겨진 우주인과 그를 귀환시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SF 휴먼드라마로 오는 12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다.
“황정민이 우주복을 입는다! 너무 기대되지 않아요?(웃음) 한국에서는 아직 한 번도 우주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궁금했어요. 이런 SF물은 처음이니까요. 사람에게는 처음이 주는 설렘이 있잖아요. 물론 욕도 더 많이 먹겠지만, 처음이라는 게 얼마나 재밌고 신기하고 흥분돼요? 게다가 (‘공작’으로 한 번) 바닥을 찍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어요. 저 진짜 잘할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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