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 국제법상 ‘치외법권’ 가져…욱일기 게양 ‘강제’ 불가
해군 “‘해상사열 때만 욱일기 내려달라’ 계속 일본에 요청”
日 “욱일기 게양할 수 없다면 관함식 불참” 기존 입장 고수
[서울=뉴스핌] 하수영 수습기자 = 최근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욱일기 논란’이 일단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오는 10일 제주민군관광복합미항(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국제관함식’에 일본 자위대의 불참이 5일 최종 결정됐기 때문이다.
정부와 해군은 욱일기 게양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의견 합의를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끝내 ‘욱일기’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외교부는 2일 정례 브리핑을 통해 “외교적 채널을 통해 일본에게 ‘우리 국민 정서를 감안해 달라’며 욱일기 게양 ‘자제’를 ‘요청’했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해군 관계자도 5일 “일본에 ‘관함식 전체 기간이 아니라 해상사열 기간에만 자국기와 태극기를 달아 달라’, ‘해상사열 때는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그 때만큼은 그렇게 해 달라’고 계속 요청을 했다”고 해 ‘협상 노력에도 불구 일본이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했다.
우리는 왜 일본에게 ‘자제’해달라고 ‘요청’만 할 수 있었던 걸까. 우리나라 영토에서 개최되는 행사인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바로 일본 자위대가 우리의 법 영역을 벗어난 ‘치외법권’ 지역이기 때문이다.
욱일기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군함=외교관처럼 ‘치외법권’ 대상…체류국 아닌 국적국 법 적용 받아
日 해상 자위대, 일본법 적용 대상
해군 “군함은 국제 관례상 ‘그 나라 영토’로 간주”
‘치외법권’이란 외국인이 현재 머무르고 있는 국가법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외국인은 ‘속지법주의’를 따라야 한다. 쉽게 말해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다. 체류 중인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하고, 죄를 지을 경우엔 그 나라 법에 따라 재판을 받는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해외에 체류 중이라 할지라도 그 국가의 법을 따르지 않고, 국적국 법을 따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외교관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치외법권’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치외법권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돼 있다.
치외법권의 영역에 속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바로 군대와 군함이다. 국제관습법에 따르면 군대와 군함이 해당 국가의 승인을 얻어 그 국가의 영토나 영해에 들어간 경우 치외법권을 갖게 된다. 해당 국가는 이 군대와 군함에 재판권이나 행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 다만 외교관의 치외법권과 완전히 같은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거의 비슷한 수준의 치외법권을 갖는다.
욱일기(욱일승천기)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한 깃발로,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자위대가 이 깃발을 게양한 채 관함식 해상사열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높아진 것이다. 그러나 이 자위대 역시 치외법권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설령 일본이 ‘욱일기를 달고 제주도에 입항하겠다’고 해도 우리가 그걸 막을 방법이 없다.
해군 관계자는 “국제 관례상 군함은 치외법권 대상이고 그게 군함의 법적인 지위”라며 “군함은 세계 어디를 가든 자국 영토로 간주되므로 (설령 일본이 욱일기 게양을 고집한다 해도)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로이터=뉴스핌] 오영상 전문기자 = 인도양에서 훈련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의 헬리콥터모함 '카가'에 전범기인 '욱일기'를 달고 있는 자위대원. 제주에서 열릴 국제관함식에서 일본의 욱일기 게양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일본 자위대 수장인 통합막료장(우리의 합참의장)이 "욱일기를 내리는 일은 절대 없다"고 못박았다. 2018.09.22 |
◆日 해상자위대 “욱일기 게양은 자국 법령에 따라 불가피한 것”
일본, 욱일기 논란에도 입장 굽히지 않아…관함식 불참 통보
해군 “앞으로도 교류‧협력 지속할 것”…욱일기 논란 재발 소지 다분
해군에 따르면, 일본 해상자위대는 5일 오전 “한국 해군이 통보한 원칙(마스트에 자국기와 태극기를 게양)을 존중할 것이나 자국 법령에 따라 해상자위대기(욱일기)도 게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해 왔다.
해상자위대는 또 “이는 자국 법령과 국제관례에 의거한 것”이라며 “이러한 입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이번 관함식에는 일본 함정이 참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군은 5일 공식입장을 통해 “정부는 그동안 해상사열 원칙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국민의 정서를 적극 감안할 필요가 있음을 전달하고 의견 교환을 해 왔지만 일본이 우리 해군이 통보한 해상사열 원칙을 수용하지 않았다”며 “세계 해군 간 평화와 화합을 위한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참가하지 못하게 된 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군은 “앞으로도 양국 해군 간의 군사교류와 우호증진은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양국은 그 동안 수차례 발생한 과거사 관련 논란에도 불구 양국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을 해 왔다. 하지만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에 대한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욱일기 논란 역시 해결되지 못한 채 불씨를 그대로 남기게 됐다.
suyoung07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