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5월12일까지…서울(삼청) 2월24일까지 개최
철→구리→알루미늄 등 '물성'과의 관계 탐구
작품으로 힐링…'낯선자'(영혼·정신 등)와의 만남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 = 한국 추상조각 1세대 작가 엄태정의 개인전이 아라리오갤러리 서울과 천안에서 동시 개최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9년 작품부터 2018년 신작까지 엄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조각과 평면 작품 50여 점을 볼 수 있다. 천안에 조각 작품들을, 삼청에 평면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나누어 배치했다.
[서울=뉴스핌] 이현경 기자=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엄태정 작가 2018.01.21 89hklee@newspim.com |
올해로 81세인 엄 작가는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작가다. 특히 엄 작가는 물성 탐구에 열심이다. 1960년대 초반 철의 물질성에 매료된 이후 지금까지도 금속 조각을 고수하며 작업하고 있다. 1960~70년대는 철, 1970~80년대는 구리, 1990년대 이후에는 알루미늄을 주재료로 삼았다.
2000년대 이후에도 엄 작가는 작업에 대한 열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 점이 아라리오갤러리가 엄 작가와 개인전을 준비하게 된 지점이다. 갤러리 측은 "2000년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작가의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세계를 알려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전시는 2년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돼 1년 정도 준비했다"고 소개했다.
엄 작가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67년 그의 대표적 철 조각 '절규'로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다. 전시 개막 전날인 21일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뉴스핌과 만난 작가는 "당시에는 화랑도 잘 없었다. 국전만이 미술계에 입단할 수 있는 통로였다. 국전을 하면 나라 전체가 흔들렸다"고 회상했다.
고요한 벽체와 나 Serene Wall and I, 2018, aluminum, steel, 300x300x200(h)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
1970년대에는 재료 내외부의 상반된 색과 질감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구리조각을 발표했다. 1980~90년대에는 '천지인' 연작과 같이 수직 구조가 강화된 구리 조각들의 추상적 형태 안에 하늘과 땅과 인간과 같은 동양 사상을, 190년대 '청동-기-시대' 연작에 한국 전통 목가구나 대들보 등의 형사들을 반영했다. 2000년대부터 알루미늄 판과 철 프레임을 주재료로 조형성에 더욱 집중한 작품을 발표했다. 수직과 수평, 면과 선의 조형성과 은빛과 검정의 색채 조화를 통해 음과 양, 시간과 공간 등 서로 다른 요소들 간의 공존과 어울림을 이야기했다.
엄 작가는 경예스러운 태도로 '물성'을 대한다고 했다. 그는 "근대 미술에서 기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물성이 중요한 거"라며 "나무를 대할 때도 돌을 대할 때도 금속이 나를 만나는 게 아니라 내가 금속을 초대해 만난다고 생각하고 작업한다"고 설명했다.
두 개의 날개와 낯선 자 A Stranger Holding Two Wings, 2018, aluminum, steel, 92x168x240(h)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
2000년대 이후 알루미늄으로 작업한 이유에 대해서는 '소멸성'을 곁들여 '두개의 날개와 낯선자'도 알루미늄과 철판으로 작업했다.
그는 "철 소재가 밖에 내놓으면 쉽게 녹 쓴다. 소멸된다는 거다. 소멸돼 사라지는 건 작가로서 의미가 없다"며 "알루미늄은 가볍지만 무거운 느낌이 있다. 철과 알루미늄을 곁들였더니 좋은 인연을 맺고 있다. 내식성이 있어 녹이 안 쓴다. 대단히 궁합이 잘 맞는 재료"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자신이 하는 조각 작업에 대해 "작품을 하는 일은 곧 치유의 일"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낯선자'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엄 작가는 "'낯선자'가 'Starnger'와는 다른 뜻이다. 낯선자는 스피릿(Spirit), 소울(Soul), 갓(God), 이런 개념이다. 낯선 상황과 낯선 이를 만나면서 힐링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을 만나는 그러한 개념이 낯선자다"라고 말했다.
기-69-1 Energy 69, No.1, 1969, steel, 105x200x135(h)cm [사진=아라리오갤러리] |
엄태정 작가는 1938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영국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를 지냈다. 1967년 국전 국무총리상, 1971년 한국미술대상전 최우수상, 2012년 이미륵 상 등을 수상했고 광주 상공회의소 화랑 개인전을 시작으로 상파울로 비엔날레, 런던 우드스탁갤러리, 베를린 게오르그 콜베 뮤지엄, 서울 성곡미술관 개인전 외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며 2013년부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서울 삼청점은 2월24일까지, 천안점은 5월12일까지 전시가 이어진다.
89hk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