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주식부터 통화까지 이머징마켓 자산이 연초 강한 랠리를 연출하는 가운데 월가 투자은행(IB) 업계가 반전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서프라이즈’를 앞세운 신흥국 자산시장의 골디락스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트레이더 [사진 = 로이터 뉴스핌] |
연초 강한 랠리에 따라 관련 자산의 밸류에이션 매력이 크게 희석됐고, 거시경제 하강 리스크가 악재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
8일(현지시각) 시장조사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연초 이후 남아공 랜드화가 5.2% 뛰었고, 러시아 루블화(4.9%)와 브라질 헤알화(4.4%), 태국 바트화(2.9%), 인도네시아 루피아화(2.9%) 등 신흥국 통화가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MSCI 신흥국 통화 지수는 올들어 2.1%에 달하는 상승 기록을 세웠다.
주식시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연초 관련 펀드로 뭉칫돈이 밀려들면서 MSCI 신흥국 주가 지수는 올들어 9%에 달하는 상승 기염을 토했다. 투자등급부터 정크까지 채권시장도 돈잔치가 한창이다.
월가의 전망은 흐리다. 연준을 필두로 소위 중앙은행 ‘풋’이 재개되고 있지만 자산 인플레이션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멕시코 페소화의 상승 기류가 꺾이면서 이 같은 의견에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풍부한 유동성과 수출 주도 경제의 특성을 앞세워 역사적으로 신흥국 자산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페소화는 지난달 25일까지 9주 연속 상승하며 20년래 최장기 강세 기록을 세운 뒤 내림세로 돌아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최근 보고서를 내고 “신흥국의 구조적 리스크가 조만간 자산시장에 한파를 몰고 올 것”이라며 관련 자산에 대한 헤지 강화를 권고했다.
이 밖에 소시에테 제네랄(SG)과 웰스 파고, 모간 스탠리 등 주요 IB들이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어 주목된다.
SG은 투자 보고서에서 “2020년 상반기 미국 경기 침체가 가시화될 것”이라며 “침체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SG은 한국 원화와 인도 루피화, 대만 달러화의 비중 확대를 골자로 한 리스크 헤지 전략을 제시했다.
싱가포르 소재 ANZ의 쿤 고 아시아 리서치 헤드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터뷰에서 “연준의 비둘기파 행보와 G2(미국과 중국) 무역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가 이미 신흥국 자산에 충분히 반영됐다”며 “앞으로 실제 무역 협상 결과와 지구촌 경제 성장 둔화가 자산시장의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밖에 모간 스탠리는 보고서에서 신흥국 자산에서 밸류에이션 매력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미국 투자 매체 배런스는 상품 가격의 약세 흐름에 주목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이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이머징마켓 주식과 통화의 상승 모멘텀이 지속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무역 협상이 불발된 가운데 내달 1일 시한이 종료된 뒤 관세 전면전이 재개될 경우 금융시장의 충격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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