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 정치권의 과세 움직임에도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오히려 대폭 늘어나 관심을 끌고 있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으로 고용 창출과 중장기 성장을 위한 투자보다 주주들에게 돈 잔치를 제공하는 데 급급, 미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의 주장이다.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정치권이 자사주 매입에 대해 배당에 상응하는 세금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나섰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움직임이다.
22일(현지시각)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에 따르면 연초 이후 미국 상장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122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91% 폭증한 수치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올해 자사주 매입 규모가 지난해 1조달러를 넘어선 사상 최고치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 이익 침체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기업들은 자사주 매입에 뭉칫돈을 쏟아내고 있다.
코카콜라는 최근 자사주 1억5000만주를 추가로 매입할 계획을 밝혔다. 21일 종가를 기준으로 70억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한편 시장조사 업체 EPFR 글로벌에 따르면 미국 주식펀드에서 12주 연속 자금 유출이 발생했다. 헤지펀드도 27억달러 팔아치웠다.
최근 한 주 사이 자사주 매입 효과를 제외할 경우 S&P500 지수를 구성하는 11개 섹터 가운데 순매수를 기록한 섹터는 2개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올들어 주가 급등을 이끌어낸 상승 동력이 투자자의 ‘사자’가 아니라 자사주를 대량 사들인 상장 기업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리고 있다.
기업들이 이익금을 동원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사이 투자자들은 차익을 실현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시장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에 대한 과세가 실제로 강행될 경우 뉴욕증시가 커다란 하락 압박에 시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0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버니 샌더스(버몬트, 무소속) 상원의원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의 칼럼을 통해 기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 마련을 등한시 한 채 주주들의 배를 채우는 데 급급하다고 비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JP모간 펀드의 데이비드 켈리 전략가는 CNN과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기업들의 자금 운용을 부적절한 방향으로 좌지우지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치권의 압박이 아니더라도 기업 자사주 매입이 소강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기업 이익이 2분기 연속 감소, 소위 어닝 침체가 가시화될 경우 자사주를 사들일 수 있는 자금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모간 스탠리와 골드만 삭스 등 투자은행(IB)은 S&P500 기업의 이익 침체가 이미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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