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직원들 "상대방 진심 믿고 의견 듣던 침묵의 거인"
어렸을 때부터 '검소함' 몸에 배...가훈은 '수분가화'
[서울=뉴스핌] 유수진 기자 =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7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일평생 검소하고 겸손했던 고인의 생전 성품이 주목받고 있다. 지인들은 박 명예회장을 "내가 양보하면 된다"며 주변을 넉넉하게 품어줬던 '큰 어른'으로 기억한다.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사진=두산그룹] |
4일 재계에 따르면,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장남인 박 명예회장은 지난 3일 저녁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다. 지난 1963년 평사원으로 동양맥주에 입사, 한양식품 대표와 동양맥주 대표,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오른 박 명예회장은 인화를 중심에 둔 인재 중시 경영으로 '글로벌 두산'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 받는다.
고인은 한 번 일을 맡기면 상대방을 신뢰하고 오래도록 지켜보는 '믿음의 경영'을 실천했다. 두산 직원들은 고인에 대해 "세간의 평가보다 사람의 진심을 믿었고 다른 이의 의견을 먼저 듣고 존중하던 '침묵의 거인'이셨다"고 기억한다.
특히 고인은 집이나 직장에서 좀처럼 먼저 입을 열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자신에게 최종 결정 권한이 있었지만 일단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경청한 뒤 짧고 간결하게 뜻을 전했다. 사업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무진의 의견을 먼저 듣고 난 뒤에야 직접 입을 열어 방향을 정했다.
생전에 박 명예회장은 '책임감' 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는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된다. 또한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만다"며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명예회장은 늘 검소하게 살려고 애썼다. 어려서부터 선친에게서 받아온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고인은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지내면서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했다.
사실 박 명예회장은 '검소함'이 몸에 밴 사람이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 집안이 큰 포목상을 했지만 색이 다 바랄 때까지 무명옷을 입었다.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그러면서도 살뜰히 주변을 챙겼다. 경성사범학교 부속 보통학교 다닐 때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은 급우들을 위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했다.
집안의 가훈은 '수분가화(守分家和)'로 정했다.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이다. 고인은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며 분수에 맞는 삶을 강조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하루는 박 명예회장이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해 사무실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을 한 탓이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한 사람으로 박 명예회장과도 40여년간 일을 함께 했다.
고인은 야구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했고, 2군 창단과 어린이 회원 모집도 가장 먼저 했다. 심지어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직접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일일이 선수들의 손을 맞잡았다.
특히 지난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 들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지었다.
uss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