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그에게 분량은 의미가 없다. 작품의 색깔도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나 그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압도당한다. 최근작만 돌아봐도 예외는 없다. 공권력에 희생된 조카의 시신을 목도하고 오열하는 박종철의 삼촌(영화 ‘1987’, 2017), 마약 투여로 고통을 잊은 채 목욕탕에서 폭력배들을 상대하는 성강파 보스(영화 ‘마약왕’, 2018), 국가부도 위기에서 제 이익 찾기 바쁜 재정국 차관(영화 ‘국가부도의 날’, 2018)까지. 우리 중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는 없다.
배우 조우진(40)이 이번에는 금융감독원의 사냥개가 돼 돌아왔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신작 ‘돈’을 통해서다. 이 영화는 부자가 되고 싶던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난 후 거액을 건 작전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렸다. 조우진은 조일현과 번호표를 뒤쫓는 한지철을 열연했다.
“출연작을 객관적으로 못봐요. VOD 시장에 나왔을 때야 볼 수 있죠(웃음). 전 어떤 작품을 출연할 때 가장 먼저 역할에 감정 이입이 가능한가, 대사와 지문 속 호흡을 담아낼 수 있는가를 봐요. 그다음은 배울 점을 보죠. 그래야 애정을 갖고 달려드니까요. 예를 들면 ‘마약왕’에서는 자유로움, ‘국가부도의 날’에서는 흐트러짐 없는 신념과 확신을 배웠죠. 이번엔 자기 일에 대한 무한 애정을 봤고 그래서 하고 싶었어요. 물론 나쁜 점들은 빼고요. 시스템을 무시하고 상사의 뜻을 거스르고 가정에 소홀한 것 같은.”
조우진이 연기한 한지철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자면 이렇다.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 뱀 같은 눈으로 부당한 작전의 냄새를 맡고, 한번 물면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다. 그래서 별명이 ‘사냥개’다. 조우진은 이런 한지철을 ‘집요함’ ‘워커홀릭’ 두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접근했다.
“사냥개라고 해서 무작정 센 표정, 강한 톤으로 접하지는 않았어요. 그럼 너무 정답을 주는 거 같았죠. 게다가 그건 관객이 봐왔던 제 모습 안에서 가능하니까 돈 내고 오시는 분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하는 과정을 먼저 거쳤어요. 그러다 ‘이혼남’이란 설정도 나왔고요. 전 또 한지철이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판단해서 연기하는 조우진은 마음을 최대한 열어놨죠. 한지철로는 모든 상황과 상대의 말, 표정에 반응을 솔직하고 즉각적으로 할 수 있게 했고요.”
캐릭터에 대한 분석을 정확히 했기 때문일까. 현장에서 나오는 그의 아이디어는 이 영화의 소중한 피와 살이 됐다. 메가폰을 잡은 박누리 감독 역시 “조우진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아이디어가 끝없이 나온다. 궁금한 걸 참을 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영락없는 사냥개 같았다”고 칭찬했다.
“오히려 감독님 덕에 가능했죠. 감독님의 목표점이 정확했어요. 어떤 아이디어를 제시해도 답이 명료했죠. 피드백이 명확하니까 저 역시 더 신나게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특히 코믹한 요소들은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한지철은 사회에 필요한 사람으로 행동하면서 동시에 영화적 재미를 주는 캐릭터로도 생동해야 했죠. 그 간극이 커지면 영화와도 어긋나고 연기도 달라져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최대한 변곡점을 확실히 찍어주면서도 현실에서 나올만한, 과잉되지 않은 호흡으로 하려고 했죠.”
돈에 관한 영화이니 역시나 돈 이야기도 빠질 수 없었다. 조우진에게 돈이란 어떤 의미이고 그는 돈에 관한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졌을까.
“사실 의지는 있지만 그에 비해 돈을 잘 몰라요. 그럴 정도로 잘 벌지도 않고요. 물론 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죠.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내부자들’(2015) 이전에는 사람도리를 단 1도 못할 만큼 돈이 없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는 윤택해졌으나 아직 잘 모르겠어요. 벌고 모으는 단계라서. 다만 늘 말하지만 사람이 돈보다 위에 있어야 하고 저에게는 돈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는 거죠. 그러니 돈보다는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하지 않나 싶어요. 요즘에는 돈을 잘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해요.”
잘 쓰는 것.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느냐고 묻자 “결혼”이란 즉각적인 답이 나왔다. 앞서 조우진은 지난해 10월 14일 11년간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그는 돌이 지난 딸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놔 화제를 모았다.
“결혼의 영향이 크죠. 결혼하고 나니까 가족을 위해 잘 쓰는 게 더 중요해진 듯해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할까요? 어느 정도 가족의 평화를 이룬 후에는 나누고 싶더라고요. 단순히 밥을 사주고 누군가를 챙겨주는 걸 넘어서 사회 환원, 봉사 등을 실천하고 싶죠. 가끔 주위에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분명 또 다른 행복감이 오겠죠. 그건 또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잖아요. 아직은 포부이자 꿈인데 해보고 싶어요.”
차기작은 봉오동 전투를 다룬 영화 ‘전투’다. 현재 공유, 박보검이 캐스팅된 ‘서복’ 출연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그야말로 쉴 틈이 없다. 최근 3년간 그가 출연한 작품만 20여 편. 조우진은 “그래도 최근에는 두 달 정도 쉬었다. 못갔던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달릴 때는 힘든 줄 몰라요. 멈춰봐야 아는 거죠. 최근에 쉬어 보니 숨이 차긴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현장에 가지 않은 게 열흘 정도 됐을 때는 적응이 안됐죠. 활자 중독이라 책 꺼내 다 읽고 잠 안오면 술도 마시고 운동도 파고들고. 연기 외에 다른 걸 지독하게 했어요. 당연히 감각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도 했죠. 그럴 때면 시나리오를 더 열심히 봤고요. 정말 짧은 기간 많은 작품을 했어요. 그래서 들리는 걱정과 우려도 알죠. 모든 걸 겸허히 수용해서 늘 새로운 모습,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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