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숙혜의 월가 이야기
[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미국 IT 공룡 기업들이 2017년 말 트럼프 행정부의 세금 인하로 얻은 혜택으로 주주들 주머니를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을 인하해 주면 고용과 함께 투자를 확대, 미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마련할 것이라는 약속과 어긋나는 움직임이다.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10대 IT 업체의 지난해 자사주 매입 규모가 169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전폭적인 법인세 인하를 단행하기 전인 2017년에 비해 무려 55% 급증한 수치다.
이와 별도로 시장조사 업체 트림탭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에 따르면 미 IT 섹터 전체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3870억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이는 2017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반면 같은 기간 해당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비용은 제자리 걸음에 머물렀다. 뿐만 아니라 IBM이 전세계 1만6000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등 오히려 일부 기업은 인력 감축에 나섰다.
세금 인하 직후 애플은 생산라인 확대 및 신규 고용을 통해 5년간 3500억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효과를 제공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실제 투자 실적은 크게 미달하는 실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대폭 낮춘 데 따른 반사이익이 미국 가계와 근로자들보다 주주들에게 집중됐다는 얘기다.
업계 전문가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트림탭스의 데이비드 산치 유동성 리서치 이사는 보고서에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은 기업 고위급 경영진들과 고액 자산가들을 살찌우는 동시에 부의 불평등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자사주 매입은 그 자체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고,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를 개선시키는 형태로 주가 상승 모멘텀을 제공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세제 개혁이 당초 취지와 어긋난 부분은 또 있다. 그는 IT를 중심으로 기업들이 해외에 예치한 이익금 4조달러를 환입, 실물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실상 지난해 환입된 금액은 6650억달러에 그쳤다.
그나마도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사주 매입에 동원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대와 달리 지난해 4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은 2.2%를 기록, 전년 동기 2.3%보다 낮은 수준에 그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목표했던 4.0% 성장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연방준비제도(Fed)의 매파 정책 기조를 비난하고 있지만 실상 근본적인 원인은 부적절하고 비생산적인 자본 배분에 있다는 주장이 월가에서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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