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헌규 중국전문기자= 세계 3대 요리로 꼽히는 중국 음식중에서 돼지고기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굳이 비유하자면 우리 식생활에서 쌀과 비슷한 존재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돼지고기는 주식 중의 주식이며 최고의 국민 식료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양안천하 (猪粮安天下)’. 돼지고기가 뉴스가 될때마다 매체에 등장하는 말로, ‘돼지고기는 식량과 더불어 세상 민심을 평안케하는 요체’라는 뜻이다. 돼지고기의 수급과 가격은 단순한 식품 문제를 넘어 정치 체제 안정과도 직결되는 사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소비국이기도 한 중국 천하가 요즘 돼지고기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 때문에 편안치가 못한 모습이다. 작년 8월 중국에서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이 발생한 후 공급이 달리고 가격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은 중국 사육농가에 직격탄이 됐다. 세계 사육량의 절반인 4억 마리를 넘었던 사육량은 열병 발병 이후 급감했다. 올해 3월말 현재 사육두수는 3억7530만 마리로 작년 동기에 비해 무려 4000만 마리나 줄어들었다.
중국 돼지 사육두수는 이미 10년래 최대폭인 19% 정도 줄었고, 올 한해 전체적으로도 최고 30% 정도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소비가 줄지 않은 상태에서 사육 공급량만 급격히 줄어들다 보니 생돈 돼지고기 시중 판매 가격이 나날이 치솟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3월 중국 돼지고기 가격은 전년동기비 7.6%나 뛰어올랐다. 이대로 가면 2019년 하반기 돼지고기 가격이 70% 상승할 것이라며 정부 스스로 걱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최근 나온 중국 농업전망보고서(2019~2028)는 '향후 10년 동안 중국이 돼지고기 공급 부족을 겪게 될 것이며 수입도 계속 늘수밖에 없다"고 예측했다.
이미 3월초 이래 미국 시카고 상업거래소의 생돈 선물 가격이 59%나 폭등하면서 글로벌 돼지고기 파동 우려를 높이고 있다. 증시에서는 돼지고기 가격 폭등, 이른바 ‘돼지 파동’에 투자하는 배팅세력들이 늘어나면서 테마주가 들썩이고 있다.
상당수 돼지 테마주들의 주가가 올들어 이미 두배 이상 치솟았다. 그중에서도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신우펑(新五丰, 600975.SH) 주가는 4월 셋째주 현재 상승폭이 323%에 달했다. 4월 21일 현재 상하이 종합지수 상승폭은 31.15%인데 비해 23개 종목으로 구성된 ‘돼지고기 지수’ 는 95.14%를 기록했다.
돼지고기 가격 급등은 대체제인 다른 육류 가격과 함께 식료품 전반으로 옮겨 붙어 전체 물가 불안을 가중 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중국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폭이 2.3%로 3개월만에 2%대로 오른 것도 경기회복의 시그널이라기 보다는 부동산과 함께 돼지고기 가격 상승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통화 당국 역시 돼지고기 가격 급등이 다른 물가 부문에 초래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일각에선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당초 경기부양을 위해 조기 지준율 인하를 검토했었으나 물가 불안을 의식해 긴축완화 템포를 한걸음 늦췄다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 베이징의 한 슈퍼마켓 정육점 코너에 돼지고기가 진열돼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돼지고기 파동을 막기위해 중국 정부는 수급 안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대폭 늘리는 것을 보면 미국과 무역 전쟁중이라는 사실 조차 잊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4월 중국 대미 돼지고기 수입량은 무역전쟁 훨씬 전인 2017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 (国以民为本,民以食为天). 중국 통치자들이 금과옥조로 새기는 말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마디가 더붙어 ‘식이저위선(食以猪为先)’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먹는 것 중에는 돼지고기를 으뜸으로 한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는 먹거리. 그들의 식탁에 돼지고기 올리기가 힘들어지는 날이면 천하도 태평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산과 소비 모두 세계 최고인 돼지고기의 나라,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급등하는 돼지고기 가격때문에 체제 안정의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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