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공·노동운동가·도의원 거쳐 국회 뱃지 달아
"노회찬 빈소에서 시민들이 빈자리 준비하라 했다"
"포장보다는 진정성으로 인정받도록 하겠다"
[서울=뉴스핌] 김현우 기자 =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4일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처음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걸음을 내디뎠다. 의원 사무실 배정 소식을 모르던 그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의원실에서 대기하던 중이었다.
잠시 카페에 가던 길, 국회 사무처 직원과 마주쳤다. 그 직원은 “(의원회관) 510호에 문패를 걸어두고 오는 길”라고 말했다. 여 의원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순간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510호는 고(故) 노회찬 의원의 방으로 익히 알려진 곳이다. 노 전 의원이 쓰던 소파와 의자 같은 집기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여 의원에게 노회찬은 여전히 함께 걷는 동지이자 버팀목이었다.
여 의원은 지난달 30일 뉴스핌과 가진 인터뷰에서 ‘노회찬의 후계자’라는 별칭을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정의당 경남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2016년 20대 총선에서 노 전 의원을 창원 성산으로 데려온 장본인이었다.
여 의원은 노 전 의원에 대해 “노 의원의 선거본부장을 하고 지역 활동도 함께 했다”며 “노회찬 국회의원, 여영국 도의원, 노창섭 창원시의원 이렇게 셋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왔다. 모든 것을 함께 한 사이”라고 말했다.
그가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한 계기는 노회찬을 기억하는 시민들 때문이다. 여 의원은 “노 의원 빈소에서 시민들이 여영국이 출마할 거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며 “많은 조문객들이 흐느껴 울면서도 마음을 다잡고 빈자리를 준비하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은 여 의원이 국회의원이 된지 4주째 되는 날이다. 여 의원은 "대기업 노동자들은 학자금 지원 등 각종 사내 복지 혜택을 받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며 "정작 복지가 부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복지를 줄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mironj19@newspim.com |
◆ 노회찬을 창원으로 이끌었던 용접공 출신 도의원, 국회의원이 되다
여 의원은 1983년 용접공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방산업체 최초로 진행된 통일중공업 파업에 참가했다가 해고되기도 했다. 여 의원은 이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투신, 창원지역 사업장의 노조 활동을 이끌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의원 10명을 당선시키며 파란을 일으켰다. 노 의원이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발을 들인 해였다. 그 때 여 의원은 중앙정치에서 노동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반면 지역에선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현실에 도의원 출마를 결심했다.
하지만 어렵게 당선된 도의원 생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거대 양당체제는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극심한 차별을 느끼게 했다. 여 의원은 “지역은 수십년간 기득권 정당들이 조직을 꾸려온 만큼 지역 색채가 너무 강했다”며 “특히 10대 때 경남도의회는 95%가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의원들이었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광역·기초단체 의회는 국회와 달리 보좌진이 없다. 언론의 관심도 크지 않다. 여 의원은 10대 경남도의회를 노동당 의원으로, 보좌진 없이 단신으로 보냈다. 특히 당시 도의회는 홍준표 경남지사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의 세(勢)가 하늘을 찌르던 시기다.
여 의원은 “도의원 시절 다른 의원이 주먹을 날린 적이 있었다”며 “말리는 척하면서 멱살을 잡거나 밀치는 의원들도 많았지만 내 주변엔 도와줄 의원이 아무도 없었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여 의원은 홍 지사의 무상급식 폐지에 맞서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이후 행동이 먼저인 '강성'으로 소문이 퍼졌다. 그럼에도 여 의원은 행동보다는 ‘밑바닥 소통’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도의원 시절 기관장 브리핑을 받기보다는 실무자 설명을 듣겠다고 전화를 걸거나 직접 찾아가기 일쑤였다. 여 의원은 “국회에서도 의원이라는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공무원이나 기관 등 서로 존중하면서 소통을 해나가는 의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여 의원의 첫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다. 주변에선 노동운동가로서 살아온 그의 이력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다. 도의원 시절 교육위에서 활동하면서 초·중·고등학교 교육문제를 다뤘다는 경험이 있어서다. 그는 앞으로 교육위에서 국립대 대학병원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국공립유치원·초등학교 석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여영국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뉴스핌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04.30 mironj19@newspim.com |
◆ 당선되자마자 내년 총선 대비해야 할 상황..."진정성으로 성산 구민들에게 다시 인정 받겠다"
여 의원에게 남은 임기는 1년이다. 그 사이에 내년 4월 치뤄지는 21대 총선 대비를 위한 지역구 관리는 물론 중앙 정치권에서의 성과도 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국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두고 원내·원외 '투트랙' 투쟁을 펼칠 예정이다. 따라서 당분간 국회는 '올스톱' 상황이다. 상임위도 마찬가지. 국회의원으로써 의정활동을 펼칠 무대에 서기까지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여 의원은 '개점휴업' 국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국당은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정치를 내세운다지만 사실은 기득권 유지에 총력을 동원하는 듯 하다”면서 “현재 한국당의 움직임 속에 국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역구인 창원 경기는 갈수록 악화일로다. 재보궐 선거에서 맞붙었던 강기윤 한국당 후보는 선거기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지지세를 끌어모았다. 가스 터빈을 생산하는 두산중공업과 협력업체 332개사의 인력 감축이 진행된 가운데, 많은 노동자들이 여 의원에게 등을 돌렸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 경기가 악화되면서 창원 청년들이 부산·울산 등 인근 대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속속 떠나갔다.
여 의원은 마비 상태인 국회를 통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창원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경상남도, 창원시, 고용노동부 등 실무기관과 해당 부처와의 소통으로 우선 고용위기지역 확대 등 당장 창원에 필요한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단기적으로는 고용위기지역 확대, 중기적으로는 지역상생형 화폐, 장기적으로는 소재산업 육성을 대안으로 내놨다.
여 의원은 “남은 임기 동안 창원의 먹고 사는 문제에 전력을 다하겠다”며 “이번 선거에서 진보에 대한 유권자 열정도 느꼈지만 제대로 못한다면 우리도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장도 함께 받았다”고 말했다.
‘진보 1번지’ 창원 성산의 여 의원에게 정의당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양새다.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자신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자리를 여 의원에게 넘길 것으로 알려졌다. 여 의원은 “예결위원이 되면 예산 문제 접근이 수월해지는 만큼 창원을 위해 애를 쓰겠다”며 “당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20대 국회에 입성한 늦깎이 의원, 여 의원에게는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말들이 항상 따라다닌다. 실제로 노회찬 의원처럼 화려한 언변과 재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심상정 의원처럼 정무감각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포장’을 잘하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여 의원은 ‘자신의 진정성’을 내세운다.
여 의원은 “무엇을 위한 정치를, 또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공약을 반드시 지켜 성산 구민들로 하여금 제 진정성을 알게끔 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4.3 재보궐 창원성산 선거에서 당선된 여영국 당선인이 지난달 5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있다. 2019.04.05 yooksa@newspim.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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