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 후 사장단 회의... '컨티전시 플랜' 주문
"빙산의 일각일 뿐"...일본산 소재·부품 의존도 파악
최소한 소재 확보했지만...규제 장기화 사전 준비
[서울=뉴스핌] 심지혜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에서 귀국한 다음날 사장단 회의에서 '컨티전시 플랜(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했다. 5박6일간 일본 현지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파악하고, 전방위적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것이다.
[김포공항=뉴스핌] 백인혁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마치고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2019.07.12 dlsgur9757@newspim.com |
◆ 스마트폰·가전 안심 못 해...삼성, 日 의존도 파악
1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스마트폰, 가전 부문에서의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도를 파악하고 있다. 규제 개선의 실마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겠다는 의도다.
이는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 등 삼성전자 전체 사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지난 12일 일본 출장에서 귀국한 이 부회장은 바로 다음날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삼성전자 반도체·디스플레이 사업을 총괄하는 김기남 DS부문장(부회장)과 진교영 메모리사업부 사장, 강인엽 시스템LSI사업부 사장,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단기 현황 대처에만 급급하지 말고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며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이번 사태가 단순히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단순히 해당 사업뿐 아니라 이를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가전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어서다.
또 일본이 수출 규제를 확대하면 사실상 삼성전자 대부분의 사업이 타격을 받게 되는 만큼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단기 소재확보'보다 규제 장기화 대비에 초점
일단 삼성전자는 당장 공장이 멈추지 않을 정도의 소재는 확보했지만 마음이 급하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량이 충분한 것도 아닌 데다 고순도 불화수소의 경우 갖고 있는 재고가 많지 않아 지속적으로 들여와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일본 출장을 다니는 동안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소재 확보를 위해 중국이나 대만 등을 돌면서 소재 확보에 노력했을 것"이라며 "문제는 지금 규제가 빙산의 일각 수준이라는 것이다. 규제가 강화되면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타격이 갈 수 있어 이 부회장이 컨티전시 플랜을 주문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규제 품목이 3개에서 더 늘어날 경우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 많은 공정 가운데 하나의 소재만 없어도 완성을 할 수가 없다. 이는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가전에도 해당된다.
특히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하기도 힘들다. 이 부회장이 규제 가능한 시나리오와 함께 대응 방안 마련을 지시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업계에서도 일본 규제의 확전 가능성을 두고 염려하는 분위기다. 반도체·디스플레이가 전자 산업 생태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단순하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 중요한 것은 각 산업에서 일본 의존도가 얼마나 되는지, 해당 부품들이 얼마나 필수적인지를 확인하는 것"이라며 "첨단 기술 분야에선 일본 기술이나 부품이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며 일본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일본의 정교한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하려는 것"이라며 "규제가 장기화 돼 가는 분위기다. 지금 당장 소재를 확보한 것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3개월치 소재를 갖고 있다 해도 이후를 생각하면 최소 2개월 안에는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sj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