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은빈 기자 = 일본에서 동성커플에게 남녀 사실혼 관계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우쓰노미야(宇都宮) 지방재판소는 18일 동성커플 간 부정행위에 관한 사건에서 "사실혼으로 볼 수 있는 생활이라면 그에 준하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부정행위를 저지른 피고에겐 110만엔의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해당 소송은 장기간 동거했던 여성 커플 사이에 제기된 것이다. 두 사람은 2010년 동거를 시작한 커플로 2014년엔 미국서 혼인 증명서도 취득했다. 두 사람은 출산을 위해 SNS를 통해서 한 남성의 정자를 제공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피고가 해당 남성과 부정행위를 저지르면서 관계가 끝났다.
원고는 "상대방의 부정행위로 관계가 끝났다"며 640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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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도쿄 시부야구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2018'.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판결의 쟁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혼인의 자유를 정한 일본 헌법 24조가 동성혼을 부정하는지 여부였다. 일본 헌법 24조는 "혼인은 양성(남녀)의 합의를 기초로 성립된다"고 정하고 있다. 재판소는 해당 조문에 대해 "제정 당시 동성혼을 상정하지 못했을 뿐 부정하는 취지라고 말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은 사실혼 관계에 대한 법적 보호를 동성커플에도 적용할 수 있는지 여부였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은 1958년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생활하는 사실혼 관계를 "결혼에 준하는 관계"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사실혼 관계여도 부당하게 관계가 깨질 경우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재판소는 사회의 가치관과 생활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다며 "혼인을 남녀로 한정지을 필연성이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성커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지자체가 등장하는 등 사회가 변하고 있다며 "동성커플에 대한 일정의 보호 필요성은 높다"고 했다.
이어 원고와 피고가 약 7년 간에 걸쳐 장기간 공동생활을 해왔으며, 미국에서 혼인을 했던 점을 들어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손해배상액에 대해선 동성 결혼이 현재 법률로 인정되지 않게 때문에 "(남녀 간의) 법적 혼인이나 사실혼과는 차이가 있다"며 110만엔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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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도쿄지방법원에 동성결혼 합법화 소송을 제기한 동성커플들. 앞줄 오른쪽이 일본인 나카지마 아이(中島愛·40)씨, 왼쪽이 독일인 크리스티나 바우만(32)씨 커플. [사진=지지통신 뉴스핌] |
◆ 日서 동성결혼 위헌 소송도 진행중
원고 측 변호인인 시라키 레미(白木麗弥 ) 변호사는 "동성커플의 관계가 사실혼에 준하는 관계라고 인정받은 점이 가장 크다"고 밝혔다. 원고도 시라키 변호사를 통해 "사실혼이 인정받아 인생의 일부가 인정받은 기분"이라며 "비슷한 사례로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 줄어들 거란 생각에 굉장히 기쁘다"고 밝혔다.
최근 일본에선 동성결혼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 2월엔 일본 전국 5개 지방재판소에서 13쌍의 동성커플이 합법화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도 원고 측은 일본 헌법 24조 규정이 혼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지, 동성결혼을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마에조노 신야(前園進也) 변호사는 우쓰노미야 지방재판소 판결에 대해 "이번 판결은 동성결혼 소송의 원고측 주장과 겹친다"며 "헌법이 동성결혼을 금지하지 않는다는 재판 사례는 처음일 것 같다"고 했다.
다나무라 마사유키(棚村政行) 와세다(早稲田)대 교수는 "획기적인 판결"이라며 "지방재판소 판결이지만 가치관의 다양성이나 동성혼을 인정하는 세계 각국의 흐름, 국내 동성 파트너십 확대에 이어 동성결혼 용인을 위한 큰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다나무라 교수는 "법적 보호에 있어서 남녀 법률혼과 차이를 지은 점은 의문"이라며 "법률혼, 사실혼, 동성 간 사실혼 사이에 법적권리 평등을 위한 논의를 진행시킬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kebj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