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주치의 통해 '오프라벨' 처방 받아 10일 간 계속 복용
오프라벨 처방, FDA 허가한 라벨 표기 외 용도로 처방하는 것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식품의약국(FDA)의 경고에도 불구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Hydroxychloroquine)을 코로나19(COVID-19) 예방 차원에서 최근 10여일 동안 매일 복용 중이라고 밝혀 논란이다.
FDA는 지난 4월 코로나19 치료의 용도로 민간 병원이나 공중 보건 의료시설 밖에서의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은 위험하다며 "심장 박동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보고들이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달 미 재향군인병원은 해당 약물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사망률을 높였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건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 약을 처방받은 것일까. 코로나19 예방 효능을 기대할 순 있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 뉴스핌] 2020.05.15 mj72284@newspim.com |
◆ 트럼프, 주치의한테 '오프라벨' 처방받아 복용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처방전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약이다. 그는 백악관 주치의인 션 P. 콘리로부터 이 약 처방을 받았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다.
콘리 주치의는 전날 배포된 백악관 성명을 통해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사용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나는 여러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치료제의 잠재적인 효능이 위험성 보다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주치의와 상담 끝에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오프라벨'(off-label) 처방받은 것이다. 오프라벨 처방은 FDA가 허가한 내용대로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뜻하며, 말그대로 라벨에 표기되어 있는 것 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FDA는 말라리아, 루푸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 용도로 약품 사용을 승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부작용이 없다며 치료제로 써 효과가 있던 없던 '밑져야 본전' 식으로 약물을 옹호해 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적으로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백악관 직원들의 잇달은 감염 소식에 두려워진 트럼프 대통령이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약물 복용을 택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배경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초만해도 코로나19 질병이 미국까지 확산하지 않을 것이며 독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 최다 누적 확진자 수를 기록 중인데다 늑장대응 했다는 여론의 비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 통계 전문 매체 '파이브서티에이트'의 클레어 말론 정치부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에게 일종의 '치유'(cure)나 희망을 제공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말실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공식석상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방 차원의 약은 복용하는데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이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의 '남성적'(masculine) 힘의 과시 같은 것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마스크 착용 거부는 지난 1월 아이오와주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들도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 백악관 내 아무도 안 먹어…FDA, 입장 선회 논란
백악관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 처럼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복용하고 있는 인사가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일단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19일(현지시간) 먹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펜스 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본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해당 약물 복용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내 주치의는 (하이드록시클로로퀸 복용을) 권하지 않았다"며 단지 주치의의 조언에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인 그 누구라도 이렇게 의사의 조언을 따라야 한다. 나는 의사들의 조언을 따르는 어떠한 미국인에 대해서도 못마땅해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치의로부터 조언을 받고 처방받았기에 복용 중이라는 사실을 감싸려는 취지의 발언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용 사실이 논란이 된 것은 비록 자신의 주치의로부터 처방전을 받았다고 해도 병원에서의 긴급사용 외 용도로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FDA의 경고를 무시한 행동이어서 논란이 됐다.
이날 FDA는 돌연 입장을 선회했다. CNBC에 따르면 스티븐 한 FDA 국장은 코로나19 치료 용도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ultimately) 환자와 의료진 간의 선택이며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은 FDA가 말라리아, 루푸스,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에 승인한 약물"이라고 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물을 매일 복용하고 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나온 발언이어서 FDA가 행정부의 압박에 못 이겨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벨기에의 한 의사가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약물을 들고 있다. 2020.04.22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전문가들 "하이드록시클로로퀸 예방 효능, 사실무근"
그렇다면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의 코로나19 예방 효능은 기대할 순 있을 것일까. 패트리스 해리스 미 의약협회(AMA)장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는 없다"며 "현재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유망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의료센터의 전염병 전문가 오토 양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에) 쓸모없다는 게 동료 의료진 대부분의 생각"이라고 알렸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시험관 안에서 독감,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 모든 종류의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데 효과적이지만 인체에서는 질병을 줄이거나 감염을 예방하는 데 효과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양 박사는 "이 약물은 임상 실험에서 완전히 실패했다. 나는 (약물의 효과 면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다를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아무 약도 복용하지 않는 편이 무분별하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사용하는 것보다 낫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지난 4월 21일 미 재향군인병원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사망률을 높였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프랑스에서도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결과 약물을 투여한다고 해서 코로나19 중환자 치료 건수나 사망률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결론을 냈다. 중국에서도 무작위로 경미한 증상의 코로나19 환자들에게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처방하는 임상 실험을 진행했는데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된 환자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설사, 두통, 구토, 식욕부진 등 여러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예방차원에서 약물을 복용한다면 코로나19 감염자가 아닌데도 불필요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심어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