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결국 법사위원장이 문제였다. 미래통합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여·야가 전·후반기로 나눠 갖자고 제안했으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끝내 거부했다. 대신 전반기는 이미 민주당이 맡았으니, 후반기는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당이 맡자는 상식 밖의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건 협상 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21대 국회가 출발부터 삐거덕거린 것은 관행상 야당이 맡았던 법사위원장을 차지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면서 부터다. 법안 처리의 길목을 지키는 법사위원장은 단순한 상임위원장 한 자리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판 상원'으로 불릴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그래서 야당이던 민주당은 집권당의 견제와 국정운영의 균형을 위해 야당 몫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고, 받아들여져 관행으로 굳어졌다. 자신들이 요구로 관철된 '법사위원장의 야당 몫'이라는 관행을 176석의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고 합의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정치도의를 저버린 것이다. 민주당은 협상 결렬을 핑계로 국회 부의장단 협의를 거쳐 선임되는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17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다. 박병석 국회 의장은 통합당 의원 103명 의원들을 상임위에 강제 배정하기도 했다. 정진석 의원은 통합당 몫 부의장을 안한다고 거부했고, 통합당 의원 전원은 강제 배정에 반발해 사임계를 제출했다.
민주당이 국회 파행의 책임은 물론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까지 법사위원장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남은 임기 동안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을 비롯한 개혁 과제를 마무리 하기 위해서라지만, 곧이 들을 사람은 많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한다고 해서 윤석렬 검찰총장을 핍박하고 내몰려는 것에서 검찰의 힘을 분산해 권력의 비리를 보호하겠다는 저의가 이미 드러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누차 얘기한 '장기 집권'의 포석일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 148명의 서명 동의를 받아 발의됐던 '국민개헌발안권'을 담은 '원포인트 개헌안' 카드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크다. 어떤 편법을 통해 개헌안을 다룰 지 자못 궁금하다. 정치적·이념적으로 민감한 법률안도 강행 처리할 게 뻔하다. 당장 국가보안법 폐지와 낮은 수준의 연방제를 위한 법률적 근거 마련 등이 언급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 후보시절 언급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꼭 실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6·25 전쟁 70주년 기념사에서도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며, 함께 잘 살고자 합니다."라며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암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민주당이 여론을 무시하고 상임위를 독식한 것은 앞으로도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의도 조차 숨기지 않은 셈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야당 역할을 포기 않겠다"고 했지만 거대 여당의 폭주를 막을 방안은 통합당 소속 의원 전원이 의원직을 내놓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없다. 민주당은 7월 3일이 시한인 3차 추경을 위해 원 구성이 불가피하다고 내세우지만,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지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서 타협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야당이 일방적으로 양보하라는 말 아닌가. 민주당은 원 구성을 강행한 뒤 곧바로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착수했다. 6월 임시국회 회기 종료일인 다음 달 3일까지 35조원에 달하는 슈퍼 추경안을 막무가내로 통과시키겠다는 뜻이다.
야당의 추천을 규정한 법을 고쳐서라도 공수처도 출범시킬 것이다. "통합당이 반대하면 법률을 바꿔서라도 공수처를 출범시켜야 한다"는 이해찬 대표의 말은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도 사용하겠다'는 말로 들려 섬뜩하기까지 하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원 구성을 마친 후 "국회의장과 여야 모두 국민과 역사의 두려운 심판을 받겠다"고 했지만, 틀렸다. "1987년 체제가 이룬 의회 운영의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의회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이라며 "1당 독재의 문이 활짝 열렸다"는 통합당의 비판은 타당하다. 국회를 민주화 이전으로 되돌린 책임과 이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고스란히 집권 민주당이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