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라임 '껍데기'만 남아…손배소도 어려울 것"
판매사, 법률 검토 위해 시간 필요 '불수용' 가능성
[서울=뉴스핌] 백진규 기자 = 금융감독원이 라임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에 100% 보상을 권고할 예정이지만, 판매사가 이를 수용하면 배임혐의를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전면 수용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1일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2018년 11월 이후 판매된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 신청 4건에 대해 민법 제109조에 따른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결정했다. 펀드 판매사가 투자자에게 100%를 배상하라는 결정이다. 해당 판매사는 우리은행, 신한금융투자,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신영증권 5곳이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2020.05.11 pangbin@newspim.com |
펀드 판매에 대해 금감원이 100% 보상을 권고한 것이 사상 처음인 만큼 판매사들도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앞서 우리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등은 라임 펀드 고객들에 원금의 약 50%를 선지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100% 보상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금감원은 판매사들이 라임 무역금융펀드가 더 이상 회복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펀드를 판매한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라임자산운용이 투자제안서에 수익률 및 투자위험 등 핵심정보를 허위·부실로 기재했는데, 판매사들이 이를 그대로 설명해 투자자의 착오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앞서 윤석헌 금감원장은 판매사들의 선보상에 대해 "사적 화해에 의해 할 수 있다. (보상하더라도) 배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면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판매사들의 조정안 수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금융투자상품'을 판매한 데 대해 전액 배상을 할 경우, 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배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판매사는 원칙적으로 운용사의 자산운용에 대해 지시할 수 없고, 투자제안서를 그대로 고객에 전달할 수밖에 없다. 판매사 입장에서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사들도 사실상 사기를 당한 사건인데 여기에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를 적용한 것이 맞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은행 입장에서 조정안을 수용하고 투자자들에게 원금을 돌려줄 경우, 배임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이나 신한금융투자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금감원은 라임과 신금투가 2018년 11월 부실을 인지한 이후에도 부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운용방식을 변경하면서 펀드 판매를 지속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라임자산운용은 이미 '껍데기'만 남은 상태여서, 구상권을 청구하더라도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은행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무역금융펀드 외에도 라임은 모두 1조6000억원 규모 피해를 일으킨데다, 이종필 전 라임 부사장 등이 구속된 상황이다. 또한 신금투의 경우 어디까지 책임이 있는지, 얼마나 보상이 가능한 지를 따지는 것도 쉽지 않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은 판매사가 먼저 피해자에게 보상하고, 다시 운용사(라임) 등에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법률적·현실적으로 은행이 돈을 돌려받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관계자 역시 "라임은 자본여력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에 손해배상소송 등을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금감원이 분쟁조정결정문을 판매사들에 보내려면 최소 2~3일이 소요되고, 판매사는 그 후 20일 이내에 조정안 수용 여부를 밝혀야 한다.
법률 검토에 시간이 필요한 만큼 우리·하나은행을 비롯한 판매사들이 수용 여부 결정을 연기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금감원은 6개 은행에 키코 배상을 권고했는데, 우리은행을 제외한 5개 은행은 결정 시한을 수 차례 연장하다가 올해 5월 불수용 의견을 밝혔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법적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배상을 한다면 이는 은행에 손실을 입히는 행위"라며 "이사회 논의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일정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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