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정치에 거리두고 민생과 방역에 집중하겠다는 의지 표명
국내정치 개입 막겠다며 국정원 개혁한 만큼 우선 사실관계 확인해야
[서울=뉴스핌] 이영섭 기자 = 상황이 묘하게 흐르고 있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점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공작설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은 '물타기'라고 반발하고 있고 수세에 몰렸던 윤석열 후보 측은 역공에 나서며 정치권이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해당 사안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민생과 방역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지만 '국정원장'이 의혹에 휩싸인 만큼 문 대통령이 침묵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고 있다.
이영섭 정치부 차장 |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참모회의에서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정치의 계절의 돌아왔으나 청와대와 정부는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가운데 방역과 경제회복 등 현안과 민생에 집중하라"고 지시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엄정한 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후 얼마되지 않아 박진규 산업부 차관이 '대선 주자가 받아들일 공약을 발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또한 "차후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며 "다른 부처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박진규 차관 사안에 강한 질책의 목소리를 냈던 문 대통령이 박지원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15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거기에 대해서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청와대는 현재 저희에게 주어진 민생과 방역과 백신접종, 그리고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해서 높아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러내고 보여드리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선긋기에 나섰다.
그는 고발사주 의혹이 박지원 국정원장까지 불똥이 튀는 것에 대해서도 "그 문제는 국민들께서 지혜롭게 다 판단해주실 거라 믿고 정치의 계절이 왔다고 해서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치권으로 끌어들이려는, 유불리에 따라서 그렇게 이용하려는 그런 것에 청와대는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며 "국민들께서 잘 판단해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혹제기가 대통령을 끌어들여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면서 자체조사 가능성도 일축했다. 박 수석은 '청와대 내에서 자체 조사라든지 감찰은 진행하지 않나'라는 질문에도 "아직까지 그럴 계획은 없다"며 "그리고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릴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핌] 문재인 대통령이 6월 4일 오후 국가정보원을 방문해 원훈석 제막을 마친 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개정된 국정원법을 새긴 동판을 증정받고 있다.[사진=청와대 ] 2021.06.04 photo@newspim. |
그러나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막겠다며 '국정원 개혁'을 권력기관 개혁의 핵심으로 삼아왔던 과거의 발언을 보면 현재의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 국내정보 폐지와 대공수사권 이관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의 처리를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과 관련, "국정원은 대북 해외 전문 정보기관으로서 오직 국민과 국가의 안위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도록 조직과 인력을 새롭게 재편해야 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 들어 달라진 국정원 위상을 보면 정보기관의 본분에 충실할 때 국민으로부터 신뢰 받고 소속원의 자부심도 높아짐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권력기관 개혁은 어려운 일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조직을 책임지는 수장부터 일선 현장에서 땀 흘리는 담당자까지 자기 본분에만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권력기관 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의지대로 국정원법 개정안은 지난해 연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물론 아직 박지원 국정원장이 정치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니다. 여당의 주장대로 야권의 물타기일 수도 있다. 다만 이같은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권의 명운이 걸릴 만큼 중차대한 일인 것도 명백하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최소한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확인될 경우 야당의 정치공세에 대해 법적대응이나 여당을 통한 공세에 나서면 될 일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의혹에 대해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찰 모두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 박지원 국정원장 의혹을 감싸고만 있다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침묵이 득이 될지, 실이 될지 곱씹어봐야 할 시점이다.
nevermin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