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2월 은행권 대출 여력 16조원 불과
내년 가계부채 목표 증가율을 4.5%로 강화
대출여건 악화…금리인상·계약청구권갱신
[서울=뉴스핌] 홍보영 기자 = 은행들이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대출을 제한한다고 밝혔지만, 내년에는 대출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란 전망이다. 은행들이 내년 금융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치(4.5%)를 달성하려면 내년 연간 가계대출 증가 규모를 올해보다 30조~40조원 가량 줄여야 해서다. 여기에 대출수요 폭증·금리인상·계약청구권갱신 등으로 대출시장 여건은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9월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최소 1723조419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올해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인 6%대(1746조2000억원)에 임박한 수치다. 지난해 말 가계부채 잔액(1632조원) 기준 올해 대출 확대 여력은 114조2000억원이다.
올해 8월말까지 증가액(87조4000억원)과 9월 한 달간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4조4190억원)을 제외하면 10~12월 남은 한도는 22조원 가량이다. 월평균 7조원 이내로 관리해야 겨우 정부가 제시한 총량을 맞출 수 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서울 중구 NH농협은행 본점 영업점에 '가계대출 한시적 신규취급 중단'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농협은행은 11월 30일까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부동산 관련 대출을 중단한다. 2021.08.24 yooksa@newspim.com |
은행들이 대출 중단 및 한도축소 등의 극약처방을 내놓고 있음에도 대출 한파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내년 가계부채 목표 증가율을 4.5%로 낮췄기 때문이다. 올해 목표치인 6%대로 가계대출 총량을 맞추는데 성공한다고 가정할 경우 내년 가계대출 증가율은 79조원 이내로 제한된다. 신규대출을 받을 수 있는 한도가 올해보다 35조원 가량 줄어드는 셈이다. 한 달 대출여력은 6조5000여억원에 불과하다.
설상가상 내년 대출시장 수급여건은 더 나빠질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 대출규제로 인한 기저효과, 금리인상, 계약청구권갱신 등으로 수요 대비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대출을 조이면서 올해만 일단 버텨보자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며 "올해 억눌렸던 대출 수요가 내년 초에 풀리면서 가계대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대출금리 상승으로 부실이 예상되는 점도 대출 공급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국내 채권시장 참여자들은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인상주기의 종착점을 1.25%에서 1.50%로 높여 잡았다.
가계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만큼, 대출 수요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년 8월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나 전셋값은 더 폭등할 수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제는 2년 임대 기간에 한 차례 더 계약을 연장해 4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내년 8월 이후 임대차 계약을 맺을 경우 4년 임대기간 동안 오른 시세가 반영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계약갱신청구권이 종료되면 전셋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며 "내년까지 대출 관리 강화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에 따른 대출 수요를 다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내년에도 가계대출 규제 강화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이달 중순 가계대출 추가규제 발표도 예고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달 중순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발표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며 "실수요자도 상환능력범위 내에서 대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실수요자 대출인 전세대출도 막힐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전문가들은 총량 규제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를 '6%대'로 설정했지만 기준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라며 "연간 총량 관리책을 내놓기 보단 분기나 반기별로 목표를 세우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총량 규제에 맞추려다 보니 사실상 대출이 중단되는 형국"이라며 "실수요자들이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되면 리스크는 더 커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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