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신원, 작량감경으로 1심서 징역 2년6월
"금전 피해 전액 회복, 경영일선 퇴진 등 고려"
변제 위한 노력, 회사 처벌 불원도 감경사유
[편집자] 똑같은 살인 사건인데 누구는 무기징역을 받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구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죄인에게 내리는 형벌의 정도, 통상 죄인이 복역해야 할 기간을 형량(刑量)이라고 하는데요.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요소를 양형에 모두 반영해 형량을 정합니다. 같은 듯 보이지만 사건마다 다를 수 밖에 없는 '형량의 법칙'을 뉴스핌에서 8월 한달 동안 5회 걸쳐 들여다봅니다.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재벌 기업의 관행이라는 미명 하에 행해진 불법행위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나라 시장 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SK그룹의 미래 도약을 기대하며 피고인에게 징역 12년과 벌금 1000억원을 선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검사는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 과거 수년간 자신이 운영하던 SK그룹 계열사에서 총 223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같이 구형했다.
법원 판단은 어땠을까. 1심은 검찰 기소액의 약 1/4에 해당하는 580억원 상당의 횡령·배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했다.
최 전 회장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는 범죄다. 유기징역의 상한은 30년인데 2가지 이상의 죄가 경합된 경우 1/2을 가중할 수 있어 처단형 범위는 징역 5년~45년이 된다.
여기서 재판부는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존재할 경우 형기의 1/2까지 줄일 수 있는 작량감경을 할 수 있다. 16일 판결문에 따르면 최 전 회장의 법률상 처단형 범위는 징역 2년6월~22년6월이다. 최 전 회장은 작량감경의 덕을 최대한 받은 셈이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2235억 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0.28 mironj19@newspim.com |
◆'580억 유죄' SK 최신원, 피해 전액 회복→작량감경
재판부는 "사재를 출연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를 전액 회복한 점, 현재 그룹 전체의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퇴진한 것으로 보이는 점, 평소 상당한 사회공헌활동을 해온 점 등을 고려해 작량감경한 형기 범위 내에서 처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라 '상당부분 피해가 회복된 경우'에 해당해 특별양형인자로 고려할 감경 요소가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따라 최 전 회장의 선고형은 법률상 처단형의 하한인 징역 2년6월로 정해졌다.
재판부는 최 전 회장의 공소사실 중 개인 골프장 사업 추진 관련 155억원 배임에 대해 "회사 자금을 별다른 담보나 채권 회수 방안 없이 임의로 대여했으나 뒤늦게나마 원리금이 전액 변제된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한다"고 했다.
개인이 납부해야 할 유상증자 대금, 주식 양도소득세 등 280억원을 회사 자금으로 낸 부분에 대해서는 "부도를 막기 위해 유증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횡령에 이르렀던 것으로 보이고 자금을 인출한 직후부터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처분해 비교적 단기간에 횡령 금액 전액을 상환했다"며 "그러한 경위와 범행 후 정황을 참작하기로 한다"고 말했다.
또 가족 및 친인척을 직원으로 등재해 허위 급여를 지급하는 등 150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는 "수사단계에서부터 전액 피해 회사들에 변제 또는 공탁했고 나머지 횡령 금액들도 피해 회사들을 상대로 공탁하는 등 유죄로 판단하는 부분보다 현저히 다액인 250억원 가량을 반환했다"고 설명했다.
아직 항소심 재판이 남아있는 만큼 최 전 회장의 최종 형량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거액의 횡령·배임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
◆변제 위해 노력, 회사가 처벌 불원하면 집행유예 가능성도
횡령·배임 사건과 관련해 이재환 전 CJ파워캐스트 대표와 같이 처음부터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도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친동생인 이 전 대표는 CJ파워캐스트에 흡수합병된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있으면서 회사 자금으로 14억원 상당의 영국제 요트와 2억7000만원 가량의 고급 외제차·캠핑카를 구입하고 회사 법인카드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등 26억7000만원에 이르는 업무상횡령·배임액이 유죄로 인정됐다.
이 사건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범죄로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1심은 작량감경을 통해 이 전 대표의 법률상 처단형을 징역 1년6월~22년6월이라고 적시하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1심은 "수년에 걸쳐 회사 자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개인 자금으로 손실 변제 명목의 보증금 14억원을 지급해 실질적 손실 및 손해를 모두 변제했고 급여 지급으로 인한 손해를 모두 변제하는 등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등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한다"고 했다.
이에 검찰과 이 전 대표 모두 항소했으나 항소심도 "원심은 피고인에 대한 여러 양형사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선고형을 정한 것으로 보이고 원심 판결 선고 이후 양형에 반영할 만한 새로운 정상이나 특별한 사정변경은 없다"며 1심 형량을 유지했다. 쌍방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집행유예형이 확정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국내 모 대기업 계열사 직원으로 재직하며 법인카드로 10억원 상당의 회삿돈을 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는 1심에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받아 풀려났다.
A씨의 판결문에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업무상배임죄 양형기준과 관련해 '처벌불원'이 특별양형인자의 감경요소로 기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 회사에 1억1200만원을 변제했고 피고인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등에 대한 강제집행으로 약 2억원 상당이 회복될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액 합계액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은 피해 회사에 10년에 걸쳐 매년 일정금액을 지급해 피해를 변제하기로 합의했고 피해 회사는 이 법원에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며 A씨의 피해 회복 노력과 피해자인 회사의 처벌 불원 등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shl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