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뒷북대응 지적…이 장관 내달 美 방문
중국 견제용 풀이...'빈손' 통상 전락 우려 높아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산업통상부처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차의 전기차 수출이 막히게 되면서 정부의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내달 직접 통상 무대로 나서는 등 첫 시험대를 앞두고 있다.
◆ 예고됐으나 선제 대응 못한 산업부…이창양 장관 다음달 미국행 검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산 전기자동차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했다. 이 법안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만 세금공제 혜택을 받도록 공고돼다.
이렇게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당장 현대자동차의 미국 현지 자동차 공급이 어렵게 됐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지 않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여서 보조금 할인 혜택이 미국 소비자에게 돌아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사진= 현대차그룹 제공] |
앞서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차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50분동안 독대했다. 이와 함께 정 회장은 총 105억달러(13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내놨고 바이든 대통령 역시 만족스럽다는 답변을 건넸다.
그러나 이번 인플레이션감축법은 현대차의 전기차 수출을 가로막는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예상치 못한 분위기다.
정부 역시 예상하지 못한 분위기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현대차 등 국내기업이 어느 정도까지 어려워질 지 가늠하지 못했다는 게 산업부의 반응이기도 하다.
사태 해결을 위해 지난 23일 정의선 회장은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정관계 인사를 만나 IRA 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 산업부도 부랴부랴 미국측과 대면할 계획을 내놨다.
지난 25일 이창양 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규범에 대한 위배 가능성을 검토하고 한국 정부의 우려를 제기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이 장관은 다음달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함께 검토중이다. 이 장관은 "미국에 전기차를 수출하고 있는 우리나라, 독일, 일본 등의 우려가 큰 만큼 민관이 상시 소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중국 견제용으로 풀이되면서 자칫 빈손 통상외교 전락 우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이창양 장관과 안덕근 통상교섭본부장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창양 장관 뿐만 아니라 안덕근 본부장 역시 다음달 미국을 방문해 IRA로 인한 보조금 미지원 사태를 막아볼 계획이다.
이창양 장관과 안덕근 본부장의 통상외교력을 판단해볼 수 있는 시험대라는 얘기도 들린다.
[서울=뉴스핌]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오전서울 대한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열린 미국의 반도체·전기차 지원법 대응 업계 간담회를 주재, 인사말을 하고 있다.이날 회의에는 박학규 삼성전자 사장, 김동섭 SK하이닉스 사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부사장, 이방수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최윤호 삼성SDI 사장, 지동섭 SK온 사장, 이창한 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운영위원장, 정순남 전지산업협회 부회장을 비롯한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관련 업계의 대표 및 관계자가 참석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 2022.08.25 photo@newspim.com |
정부 한 고위 인사는 "산업통상을 책임지는 수장이 미국 소비 시장을 어떻게 헤쳐나가 국내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창양 장관은 산업부 공직 경험이 있으나 통상 분야보다는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의 빅테크 경험이 많아 통상외교 분야에서는 다소 내공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덕근 본부장도 국제통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나 현장에서의 협상력에 대해서는 다소 평가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의 미국 내 투자를 앞당기기 위한 포석으로 미 인플레이션법 감축법이 제정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 장관과 안 본부장의 험로가 예상된다. 당장 미국도 정책 노선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보니 일각에서 기대를 높이는 보조금 대상 제외에 대한 유예를 기대하기가 힘들 것이라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경유 산업연구원 시스템산업실장은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중국이 전기차 부분에서도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자국 제조 사이클을 구축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자동차 분야가 제조업에서도 영향이 크고 이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현대차가 현지 공장이 있기 때문에 라인을 바꿔서 정말로 단기에 필요하다면 생산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수출이 당장 줄어들 수 있다는 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