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인 트랜스젠더 "난민 인정해달라" 승소
"성 정체성 이유로 형사처벌…난민 불인정 취소"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성 정체성을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은 트랜스젠더 외국인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2부(김종호 이승한 심준보 부장판사)는 말레이시아인 트랜스젠더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법원 로고. 2020.03.23 pangbin@newspim.com |
생물학적 남성인 A씨는 10살 무렵부터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형성돼 평소 여성스러운 복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표현하며 생활했다. 그는 2014년 한 파티에 참석했다가 '여성처럼 보이게 하고 그러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돼 법원에서 벌금형과 7일간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에게 적용되는 샤리아(이슬람 관습법) 형법을 통해 동성애 등을 금지하고 처벌하고 있다.
A씨는 말레이시아를 떠나 2017년 7월 한국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A씨가 말레이시아에서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취업을 하는 등 박해받은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난민 불인정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1심 판단을 뒤집고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하라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고 자신이 처한 위협에 대해 국가에 보호를 요청할 처지도 아니었다"며 "이는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이나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로 유엔난민기구의 난민협약이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시민연대단체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논평을 내고 "성 정체성에 대한 박해를 근거로 난민을 인정한 첫 번째 판결"이라며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여전히 박해에 대한 공식적 증거를 가진 경우에 한해 난민인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더 체계적이고 원칙에 기반한 난민심사를 통해 난민인정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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