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평생교육 특별회계 이관 논의 종결
연구·개발 예산 증액에도 과기원 반대
설립 취지 맞지 않아 일반대학 전락 우려
국민 미래 지켜낼 최후의 보루는 예산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과학기술계가 최근 며칠 새 화들짝 놀랐다. 생각지도 않았던 예산을 준다며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등 4대 과기원 예산을 특별회계로 이관, 교육부와 연계하겠다는 기획재정부 아이디어 때문이다. 재정 감축 기조 속에서 예산을 더 준다니. 겉으로 보면 고마워할 일이다. 하지만 꼼수가 있었다.
지난 10일 기재부는 현재 신설·추진중인 (가칭)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로 이관되면 연구·교육 재정투자가 확대되고 안정적으로 지원된다는 논리를 세우며 4대 과기원 예산의 이관을 강조했다.
이경태 경제부 차장 |
기재부의 논리는 새롭게 확보되는 추가 재원을 통해 고등교육·연구에 대한 재정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4대 과기원은 학과신설, 정원확대 등에게 교육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는 유·초·중등교육 운영에 사용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재원 중 일부를 떼어내 대학 및 연구역량 강화에 쏟겠다는 취지로 추진되고 있다.
당장 기재부는 심의중인 4대 과기원 예산에 추가 재원을 쏟아부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한 과기원 관계자는 "기재부 고위직이 아주 거침없이 일을 추진하고 있지만 회계 논리만을 따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과기원 설립 취지가 무색해질 것이라는 4대 과기원의 우려가 반영되지 않은 것 같았다"고 토로했다.
사실 정부에서 예산을 더 지원해준다는 점에 대해서는 과기원도 귀가 솔깃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따져보니 예산 지원의 지속성도 없을 뿐더러 연구기능이 대부분인 과기원에 어떤 명목으로 지원을 해줄 지도 확실치 않았다.
일각에서는 일반 대학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틀린 말도 아니다. 과기원은 고등교육법상 대학이 아니다. 특별법으로 학위과정을 설치한 만큼 고등교육법을 준용해 대학처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말 그대로 연구기관이다. 회계로 한데 묶인다면 기관의 차별성을 바로 세우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관할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맡는다고 해도 실상 기재부와 교육부의 산하기관에 속하게 될 수 있다는 말도 들렸다. '기재부 나라냐'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기재부의 권한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타 부처로 인사 발령을 받아 떠난 전 기재부 국장은 기재부 하위 직원의 권세를 그제서야 실감하게 된다며 푸념하기도 한다. 결국 과학기술에 대해 기재부가 교육부를 빌어 '감 놔라 배 놔라'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4대 과기원과 과기부의 화상회의에서는 특별회계 이관 반대를 확정했고 그제서야 기재부도 과기원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식으로 논란을 종결했다.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결론적으로 아직은 일단락되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가 고민해왔던 과기부와 교육부간 통합을 위한 '운 떼기' 아니냐는 비난도 들린다.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윤 정부는 통합론에 대한 군불을 뗐다. 과학기술계의 불안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자료=한국과학기술원] 2021.10.29 biggerthanseoul@newspim.com |
한 과학기술계 원로는 "MB정부 때의 교과부가 부활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교육과 과학이 상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통합을 하려면 그 성격을 최대한 살릴 필요가 있는데 디테일에서 중심이 한쪽으로 옮겨지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연구는 입시·취업의 문제와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뼈를 깎는 몰입 속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 입시와 취업시장으로 매몰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같은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려 들을 수 없다. 100을 투입해 목표로 한 시기에 100을 내놓지 못하면 예산을 깎는 식의 예산 운용도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과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데는 걸맞지 않다.
이제는 기계적으로 회계적 가치 기준을 통해 예산 정책을 펴는 기재부식 '나라곳간' 관리를 개혁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다만 국회에서 예산을 심의하면서도 지역구 예산 때문에 결국엔 기재부의 눈치를 보는 국회의원은 개혁의 걸림돌이다.
그래서 내년 예산 심의는 경제 위기 속에서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로 삼아야 할 것이다.
biggerthanseoul@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