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처분을 면할 목적 인정되면 공소시효 정지"
1심 유죄→2심 면소→대법, 유죄 취지 파기환송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해외 불법체류를 했다면 해당 기간 공소시효가 정지돼 면제 나이를 넘어서도 병역법 위반죄의 처벌대상이 될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공소시효 완성을 이유로 면소 결정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A씨는 지난 1992년 만 14세 나이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당시 병역법에 따르면 25세가 되기 전 출국한 사람은 25세가 되는 해의 1월 15일까지 병무청장의 기간연장허가 또는 국외여행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A씨는 허가기간이 최종 만료되는 2002년 12월 31일까지 추가로 기간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미국에서 불법체류했다. 그러다 A씨가 입영의무 등이 면제되는 연령을 넘은 지난 2017년 한국에 귀국하자 검찰은 A씨를 국외여행허가의무위반 병역법 위반죄로 기소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1심 재판부는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병역의무자로서 국외여행허가기간이 만료했음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귀국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다른 병역의무 기피의 경우와 비교해 보더라도 그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처음 출국할 당시 나이가 만 14세 정도로 처음부터 병역의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출국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고, 출국 이후 25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영주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모두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불복한 검찰이 항소를 제기했으나 2심 재판부는 병역법 위반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고 A씨에 대해 면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은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병역법 위반죄는 국외여행의 허가를 받은 병역의무자가 기간만료 15일 전까지 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귀국하지 않은 때 성립함과 동시에 완성되는 즉시범으로 이 사건 범죄의 공소시효는 범행종료일인 국외여행허가기간 만료일부터 진행된다"고 인정했다.
다만 "피고인은 국외에 계속 체류하기 위해서는 병무청장으로부터 연장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최종 만료일인 2002년 12월 31일 이후 연장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에 계속 체류했다"면서 "피고인의 국외 체류 목적 중에는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공소시효가 정지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시효 정지의 입법취지는 범인이 우리나라 사법권이 실질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국외에 체류해 도피한 경우 체류기간 동안 공소시효 진행을 저지하여 범인을 처벌할 수 있고 형벌권을 적정하게 실현하는 데 있다.
대법은 "원심의 판단에는 공소시효 정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파기환송 결정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