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이제는 보상의 시대를 끝낼 때가 된 것 같다."
얼마 전 만난 한 부장검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한 부장검사는 검찰 내 요직을 맡은 인물로, 향후 검찰에서 중용될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장래가 밝은 검사 입에서도 이같은 말이 나올 정도로 최근 몇 년간 검찰 인사는 비정상적으로 흘러왔다.
검찰 정기인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검찰 고위직 인사는 소위 '가지치기' 형식의 인사로 승진·전보에 따라 검찰을 떠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여기에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검찰의 정치적 위치가 커짐에 따라 검찰 인사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고 있다.
사회부 김현구 기자 |
지난해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단행된 첫 검찰 정기인사에서는 과거 윤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특수통' 출신 내지는 '윤석열 라인'으로 불리는 검사들이 대거 요직을 차지했다. 이에 검찰이 윤 대통령의 시중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검사 인사권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정치적 해석이 아예 배제될 순 없다. 다만 정권 내내 비상식적 인사를 단행한 전 정권에서 현 검찰 인사를 비판하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기수 문화가 강한 검찰에서 윤석열 검사를 두 차례나 5기수씩 건너뛰며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만든 것도, 현 야권과의 설전에서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최연소 검사장 타이틀을 만들어 준 것도 모두 문재인 정권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권 출범의 일등 공신 중 한 명인 윤석열 검사, 또 그와 함께 일한 검사들에게 '보상'을 주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배 검사가 검찰을 떠났다. 현 검찰이 윤 대통령의 시중 노릇을 하고 있다면, 전 정권은 검찰을 길들여 시중 노릇을 시키려다 실패한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윤석열 검찰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전 정권은 수사 책임자는 물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의 손발을 자르기 위해 측근들을 단죄하기 시작했고, 정상적인 인사였다면 상향 곡선을 탔을 검사 중 일부가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좌천 인사를 받으면서 결국 검찰을 떠났다.
그때 검찰에 남은 검사들이 현재 법무부와 검찰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법무부와 검찰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검사들은 대부분 이미 능력을 인정받고 잘 나가던 검사들이었다. 이에 현 정권은 전 정권의 불합리한 검찰 인사를 정상으로 되돌려놓은 것이라 반박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럼에도 그 인사가 전 정권에서의 좌천을 버텨준 '보상'이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이제 와서 전 정권의 인사 전횡이 심했다, 현 정권도 똑같다 등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나간 검사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만 위 기수들의 대거 이탈로 생각보다 빠르고 급격하게 진행된 검찰 연소화는 현시점에서 제동을 걸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검사라는 직업은 특수성이 있지만 이들도 결국 공무원이고 사람이다. 본인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데도 특정 분야의 수사를 하지 않았다거나 누군가와 친분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인사에서 배제된다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단순하게 이들이 로펌으로 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연봉과 비교해도 검사는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비합리적인 이유로 배신당한다면 이들이 더 이상 검찰에 남을 이유가 없다. 경험 많은 검사의 이탈은 검찰의 수사력 저하를 불러오고,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검사 인생에서 그 누구보다 큰 인사 파고를 겪었던 윤 대통령은 이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과 검찰을 정말 생각한다면, 앞선 인사에 대한 지적을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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