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신문, 발언 전하며 '자력갱생' 띄우기
"지원 기대한다면 반드시 예속과 굴종"
인도적 대북 식량지원 재개에도 차단벽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 김정은이 지난 11월 군수공장인 용성기계연합기업소(함남 함흥)를 찾은 자리에서 "우리는 절대로 남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 대한 의존은 곧 망국의 길"이라며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일 1면 기사에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대형 압축기를 제작하던 공장 관계자들에게 "압축기를 자체의 힘으로 생산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대주의와 패배주의, 기술신비주의, 수입병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경제의 주체성을 강화하는가 강화하지 못하는가 하는 심각한 정치투쟁"이란 발언을 한 것으로 소개했다.
[서울=뉴스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8일 화성-18형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을 참관했다. 김정은이 관측소에서 발사와 관련한 지시를 내리는 모습. [사진=조선중앙TV 캡처] 2023.12.20 |
노동신문은 "가는 길이 험난하다고 하여 또 부족한 것이 많다고 하여 남에게 손을 내밀고 그 어떤 지원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벌써 후퇴이며 나중에는 반드시 예속과 굴종, 치욕이 뒤따르게 된다"며 "총비서 동지가 중요 회의마다에서 새겨 준 것도 자력자강의 고귀한 정신이었다"고 강조했다.
관영 선전매체의 이런 논조는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대북제재를 자초한 북한이 산업과 생산 전반에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식량부족 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주민 불만을 무마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장문의 노동신문 글이 지난 18일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이뤄진 화성-18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훈련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신문은 "만리를 시야에 둔 조준경과 만리를 때리는 강력한 주먹을 다 함께 자기 수중에 틀어쥔 나라, 임의의 시각에 도래하는 그 어떤 엄중한 군사적 위기, 전쟁 위기도 단호히 평정할 최강의 힘을 가진 우리 조국"이라고 분위기를 띄운 뒤 "세계가 경탄하는 강대국의 공민이라는 자부로 하여 누구나 가슴 뿌듯해하고 비록 헐치는 않았어도 자력자강의 한길로 굴함 없이 줄달음쳐온 것이 얼마나 정당하고 긍지 높은 것인가를 사무치게 절감하고 있다"고 주장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아무르 로이터=뉴스핌] 최원진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좌)이 13일 오후 극동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설 투어를 하고 있다. 2023.09.13 wonjc6@newspim.com |
하지만 이런 북한의 주장이 자가당착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과 8월 잇달아 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한 김정은은 9월 러시아로 달려가 아무르주 보스토치니우주기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나 관련 기술지원을 요청했다.
자칫 삼세번의 실패로 스타일을 구기고 리더십 위기를 맞을 뻔했던 김정은은 러시아의 발사체 기술지원에 힘입어 지난달 정찰위성 만리경-1호를 궤도에 올렸다.
북한의 현실과 동떨어진 자력갱생 주장이 주민들의 허리띠를 조이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노동신문은 "그 어떤 요행수나 외부의 도움이 아니라 오직 자체의 힘으로 걸음걸음 부닥치는 난국을 결연히 타개해 나가자"면서 "우리의 구상과 결심대로, 우리가 정한 시간표대로 새시대에로의 진군을 가속화해 나가자"고 촉구했다.
또 "이것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지니고 계시는 의지이고 혁명영도의 자욱마다에서 인민의 심장 속에 심어주시는 억척의 신념"이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북한 내부의 분위기는 식량부족 등으로 고통 받는 주민들이 한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인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원천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북 인도지원 단체 관계자는 "김정은이 '남조선 것 받지 말라'며 쐐기를 박은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어떤 북한의 대남업무 종사자들이 대북지원을 요청하거나 논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세계식량계획(WFP)등 국제기구가 북한 주민의 40%인 1100만명 정도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가정보원 등 대북 정보당국이 북한 일부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이를 책임져야할 김정은이 도외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