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윤희 기자 = "당의 단합과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면 산이든 물이든 건너지 못할 게 없다"
지난 20일 이뤄진 비공개 회동에서 범민주·범진보 진영 대표로서의 역할을 당부하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당을 위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불사하겠다 각오한 이 대표 발언의 무게만큼, 총선을 4개월여 앞둔 현 시점에서 그가 풀어갈 과제는 산적해 있다.
김윤희 정치부 기자 |
5선 중진이었던 이상민 의원은 이 대표 체제의 민주당이 "온갖 흠이 쌓여 도저히 고쳐 쓰기 힘든 상황"이라 맹비난하고 탈당했고, 당내 원로인 이낙연 전 대표는 "혼란에 빠진 대한민국의 대안이 되는 게 최상"이라며 연일 신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 중이다.
총선을 앞두고 적전분열을 우려한 민주당 의원들은 115명이 넘게 신당 추진 중단을 호소하며 서명했다. 비명계 모임 '원칙과상식'은 연서명보다 통합 비대위 전환이 신당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이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런 와중 지난 2021년 전당대회에서 '돈봉투 살포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됐던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19일 구속되면서, 관련 의혹에 연루된 의원들 최대 20여명이 총선을 목전에 두고 검찰에 줄소환될 가능성까지 커졌다.
이 대표 본인의 사법리스크 문제 역시 뇌관이다. 현재 일주일에 2~3번 꼴로 서초동 법정에 출석하는 이 대표 앞으로는 대장동·백현동 사건과 성남FC·위증교사 등 4개 혐의에 3개 재판이 걸려 있다. 위증교사 혐의에 대한 1심 선고는 내년 총선 직전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곳곳이 지뢰밭인 당 내외 상황과 연일 쏟아지는 쇄신 요구에 이 대표는 한동안 입을 닫았다. 침묵이 최선의 답이라는 결론을 내린 듯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대표에게 12월 말을 기점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결단을 내리겠다 엄포한 비주류 의원들, 전면적 혁신 없이는 대안도 없다고 말하는 원로의 목소리는 잘못 삼킨 가시처럼 텁텁할지언정 무언가 게워내게 만들기엔 미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침묵은 언제나 차악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최선이 되긴 어렵다. "작은 차이를 넘어 큰 길로 함께 가겠다"고 한 이 대표의 다짐이 현실화되려면 공고한 지지층 바깥 매섭게 날선 말까지 포용할 수 있는, 김 전 총리의 말마따나 '더 큰 폭의 행보'가 필요하다.
김 전 총리와 이 대표가 비공개 회동을 가진 날 이 전 대표는 "발표된 내용만으로 보면 당이 변화할 것인지에 진전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실망스럽다"고 혹평했다. "나로서는 해오던 일을 계속할 것이다. 다만, 민주당에 연말까지 시간을 주겠다는 나의 말은 아직 유효하다"고도 덧붙였다.
나날이 빨라지는 총선 시계에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운 시점이다.
단합을 역설한 이 대표가 정말 산이든 물이든 건너갈 의향이 있다면, 잇따른 전직 총리들과의 만남이 이 전 대표의 고립이 아닌 소통의 교두보라는 것부터 가시화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질 일들이 그에게 퍽 달갑지만은 않겠지만, 첩첩산중(疊疊山中) 속 잠긴 빗장을 풀고 끊겨 있던 다리를 재건해 나가는 용단이 이뤄질 때 당의 단합도, 총선 승리도 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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